vol.59-[푸른아시아가 만난 사람] 신승철 경남고속관광 회장
푸른아시아가 만난 사람 – 푸른아시아 회원 신승철 경남고속관광 회장
“자연을 자연 그대로 다음세대로 이어주는 게 나의 운명”
일본 후쿠시마원전 사고 보며 환경 관심 가져
사람이 살다보면 ‘이건 운명이야’ ‘운명적으로 흘러가는 거야’ 하는 걸 종종 느끼게 된다. ‘내게 운명처럼 다가오는 그 무엇’ 또는 ‘운명적인 만남’ 그런 것 말이다.
신승철 경남고속관광 회장(50)은 나이 오십 언저리에서 푸른아시아를 만난 것은 운명적이라고 한다.
“오십이면 인생을 되돌아보는 나이잖아요. 제대로 살아왔나, 잘 살아왔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우리나라를 돌아보게 되고, 세계도 돌아보게 되고… 역사적으로 발전해온 이 나라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나인데 우리나라에 대해선 점점 회의가 드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한 탓인지 원자력을 선호하는데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게 신 회장의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탈핵 전도사’로 알려진 김익중 동국대 교수를 참 좋아한단다. 가까이 살면 운전이라도 해주고 싶을 정도란다.(그의 이 말에 소박하면서도 진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일본 후쿠시마원전 사고 4년째(그는 2011년3월11일인가 하면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통제불능인 것은 지금도 그대로다. 일본 정부도 어찌 손을 못 쓰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 방사능 누출된 해수가 지구를 한바퀴 돌아 한반도로 돌아오는데 5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면 앞으로 바다에서 나는 것을 어떻게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까? 대책이 없다. 참 심각한 상황인데 그렇게 인식하는 사람이 몇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지금 수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탈원전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
전 가족이 푸른아시아 몽골 에코투어 참여
신 회장은 탈핵의 나라를 찾다가 몽골에 관심을 두게 되었단다. 그래서 몽골 관련 책도 사보고 인터넷 검색도 해보다가 푸른아시아를 알게 되었단다.
“몽골을 검색해보니 푸른아시아가 그쪽에서는 상당한 신뢰를 구축하고 있고 사막화방지활동을 활발히 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바로 문을 두드렸죠.”
그게 올해 3월 경이다. 그는 부인과 딸 둘, 전 가족이 몽골 에코투어에 참여했다.
“끝도 없이 드넓은 평원이 멀리서 보면 초원인데 가까이서 보면 맨땅이 드러난 사막화된 땅이에요. 그 넓은 땅에 비하면 푸른아시아가 나무를 심은 조림지는 하나의 점에 불과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나마 안하면 뭘 할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관광버스회사를 운영하는 신 회장은 평소 운수업이 서비스업이긴 하지만 공해산업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평소 ‘내가 싼 것은 내가 치워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단다. 이런 마음이 푸른아시아로 발길을 옮기게 했다.
그는 월 100만원씩 후원하는 기업회원을 가입했다. 어머니께 드리는 용돈보다 더 많은 금액이지만 다음세대를 위해서 기꺼이 기부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몽골에서 양묘사업 추진… 수익금은 전체 기부
신 회장은 한걸음 더 나아가 몽골에서 조경사업의 씨앗이 되는 양묘사업을 푸른아시아와 함께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사업으로 번 수익은 모두 몽골의 사막화방지사업에 기부하기로 했다. 내가 모든 걸 다 이루는(가지는) 것 보다는 푸른아시아가 사막화방지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데 기여하고자 함이다.
그의 첫 직업은 원양어선 항해사였다. 집에선 9남매 중 다섯째다. 이를 두고도 뭔가 이어주는 게 자신의 운명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원래 제 이름은 신성철이었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이름표에 신승철로 되어 있는 거예요. 학교에 이름을 올릴 때 사무착오가 난 것인데 그냥 신승철로 부르며 살았습니다. 지나고 보니 이것도 운명인 것처럼 생각되었어요. 이룰 성(成) 통할 철(徹)이 이을 승(承) 통할 철(徹)로 바뀌었는데 제가 뭘 이루는 것보다 이어주는 것이 훨씬 보람된 삶이고 의미있는 삶 같았어요.”
욕심을 내기보다 주변을 이어주는 것. 이런 게 ‘체질’이란다. 이런 성향은 어떻게 생겼을까?(그는 나이 오십이라고 하지만 배가 전혀 나오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예전부터 몸이 좀 안 좋았어요. 허약체질이었죠. 허리가 아프고 숙면을 하지 못해 고생을 했는데 그러다보니 잘 먹고 잘 사는 게 뭔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지요. 자연히 웰빙, 친환경에 관심이 가고요. 결국 운동으로 극복하게 되었죠.”
철저히 친환경적인 태평농업 농사도
그는 세상일이란 게 무리해서 잘 되는 게 결코 없다는 걸 살아가면서 깨달았다도 한다. 특히 태평농법을 배우면서 더 더욱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영문의 태평농법이란 걸 들어보셨나요? 무경운 이모작 건답직파 농법인데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땅도 갈지 않으면서 -생물학적 경운- 생물 벌레 등 천적을 이용해 농사하는 생태지속농업입니다.”
고향(전남 영암)에 논 2만5천평을 태평농법으로 경작하는데 작년에 입문(시작)하여 농약이나 비료를 기존의 3분의 1, 4분의 1만 사용했다. 갑자기 큰 변화를 주면 땅도, 나락도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서히 바꾸어 줘야 한단다. 그렇게 해보니 순수익은 비슷했다고 한다. 수확은 좀 줄었지만 농약을 안 쓰니 재료비 덜 들어가고, 인건비 덜 들어가고 결국 땅도 (좋아지니) 남는 장사, 자신도 남는 장사를 한 셈이라고 한다.
생명이란 게 다 그렇지만 약점이 있으면 그것을 극복하고자 더 강해진다고 했다. 허약체질이었던 신 회장은 이를 극복하고자 운동을 하면서 친환경, 웰빙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실천적인 삶을 살다보니 자연 속에서 지혜를 더 많이 얻게 되었다.
서울에선 운수업 회장님이지만 시골에선 친환경농사를 짓는 농부이기도 한 그는 앞으로 몽골에서 ‘친환경나무꾼’으로 더 자연을 닮아갈 것이 기대된다.
이동형 푸른아시아 홍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