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9-[Main Story]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스캔들’,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스캔들’,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9, 10월의 환경 분야 이슈 중 하나는 폭스바겐그룹의 배출가스 조작사건일 것이다. 미국에서 촉발된 이 사건은 유럽에서도 파문을 일으키고 한국에서도 소송이 제기되는 등 현재진행형으로 확산되고 있다. 폭스바겐그룹의 배출가스 조작사건은 포괄적으로는 기업윤리에 관한 문제이며 더 세부적인 잣대를 들이대자면 환경 분야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책임 문제가 깔려있다. 이를 계기로 환경 관련 기업을 중심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업윤리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클린 디젤’이 ‘더티 디젤’로

각종 언론을 통해 많이 보도되었지만 정리하자면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사건은 지난 9월18일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폭스바겐의 디젤엔진(TDI) 승용차에서 차량검사 시 배출가스 정보를 조작하는 소트프웨어가 발견됐다며 리콜 조치를 명령한 데서 비롯했다.

당시 미국 환경보호청이 확인한 조작 관련 모델은 폭스바겐의 제타, 비틀, 골프, 파사트와 계열 브랜드인 아우디의 A3 등 4개종으로 모두 4기통 2.0리터 소형 디젤 차량이었다. 하지만 이후 추가로 조작에 연루된 것으로 확인된 차량 모델은 아우디 A1, A4, A5, A6, TT, Q3, Q5 등으로 확대됐다.

리콜 대상 차량은 2009~2015년형 제타, 비틀, 골프, 2014~2015년형 파사트, 2009~2015년형 아우디 A3 등 미국에서만 48만2000여대, 세계 전체로는 무려 1100만대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2만여대에 이른다. 특히 폭스바겐 측은 유럽연합 내 리콜 대상 800만대 중 300만대는 엔진도 고쳐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폭스바겐 사태는 유럽의 비영리단체인 국제환경운송연구기구와 손잡고 있는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의 연구진이 실시한 디젤 엔진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

폭스바겐은 지난 9월 22일 배기가스 조작 파문과 관련해 미국 법무부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불거져 나오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최근 695명이 국내 법무법인을 통해 미국 법원에 ‘매매계약 취소 및 매매대금 반환 청구’ 소송을 냈다.

미국의 한 변호사는 이달 중순 캘리포니아주에서 거의 7만명의 집단손해배상 소송 대리인으로 나섰다.

미국 연방무역위원회(FTC)는 폭스바겐이 ‘클린 디젤’(깨끗한 디젤차)을 강조한 30초짜리 텔레비전 광고가 사기죄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 변호사들은 손해배상액의 약 30%를 수임료로 챙길 수 있는 수지맞는 소송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고 한다.

실제 폭스바겐 디젤차들은 도로 주행 때 기준치보다 최대 40%나 많은 질소산화물을 배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초기 대응 미흡… 사면초가 초래

한마디로 폭스바겐은 사면초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진들의 초기 대응은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지난 10월 9일 폭스바겐 아메리카 마이클 혼 대표는 미국 하원의원 청문회에서 ‘배출가스 조작’에 대해 사과를 했지만 직원이 저지른 일이지 경영진은 모르고 있었다고 책임을 회피해 사과에 대한 공감을 얻지 못했다. 더군다나 국내 폭스바겐 판매업체인 폭스바겐코리아는 사건 발생 20일이나 지나서 사과문을 발표해 수습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배출가스 조작’의 후폭풍은 엄청나다. 피해액은 천문학적 숫자다. 폭스바겐의 주가는 4년래 최저를 기록하며 시가 총액으로 보면 이틀 동안 300억달러(약 35조5200억원) 넘게 사라졌다. 관련 전문가들은 1100만대에 이르는 리콜과 벌금, 사태 수습 비용 등으로 최대 86조원의 손해를 볼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 9월30일(현지시간) 독일 최대 일간지 빌트는 이 액수(86조원)는 지난해 폭스바겐의 영업이익(127억유로)의 5배가 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0월 12일 폭스바겐 신용등급을 종전 A에서 A-로 한 단계 낮췄다고 발표했다. 향후 전망도 ‘부정적’으로 제시하고 앞으로 신용등급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폐쇄적인 조직경영의 결과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폭스바겐이 예전에도 부도덕한 기업은 아니었다. 1990년대 초반 생산성 저하와 높은 임금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었을 때 노동자 해고보다 ‘워크쉐어링(일자리나누기)’으로 생산·마케팅·노사관계 혁신을 이루어내기도 했다.

폭스바겐은 10년이 넘는 기나긴 개혁 덕분에 2009년엔 세계 메이커 중 홀로 성장가도를 달리는 탄탄한 회사로 변신했다. 2009년 1분기 당시 폭스바겐은 일본 도요타에 이어 생산량 세계 2위를 자랑했다.

위기를 극복하고 잘 나가던 폭스바겐은 왜 이렇게 추락하게 되었을까? 전문가들은 그 원인은 내부 의사결정 시스템 부실에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포르세와 피에히 가문의 경영진이 폐쇄적인 조직경영을 해온 것이 문제였다고 한다. 그리고 ‘고용보장’도 부작용이 있었다. 오너와 노조가 지나치게 밀착되는 상황을 초래하고 견제기능이 부실해 진 것이다.

 

‘윤리경영 외면 땐 치명적’ 기업들의 역사가 말해줘

기업의 비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 기업윤리 실종으로 몰락한 기업의 예는 수없이 많다.

미국의 경우에도 기업사기와 부패의 상징이 되어버린 2001년 엔론(Enron)사 회계부정 사건이 있었다. 거대 에너지회사였던 엔론은 회계 장부를 조작해 부채규모를 줄이고 이익을 과대 계상하는 방식으로 부정을 저질렀다. 이로 인해 2001년 12월 회사는 파산했으며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미국 뿐 아니라 세계경제의 불안을 초래했다.

일본 유명 자동차회사인 미쓰비시자동차도 잘 나가다가 2000년 차량 소유주에게만 연락해 수리해주던 비밀 리콜 관행이 드러났지만 사안을 축소하는 데에만 급급하다 몰락한 회사다. 4년 동안 핑계를 대다가 결국 2004년 전세계적으로 100만대를 리콜해야 했다. 그 결과 회사가 문을 닫지는 않았지만 사세가 크게 줄어든데다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1978년에 발생한 포드자동차 핀토 사건 역시 기업의 비윤리성이 크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포드 핀토(Ford Pinto) 자동차는 트렁크 아래 연료탱크를 보호하는 구조물이 없어서 후면 추돌시 연료탱크가 폭발하는 결함이 있음을 경영진이 알고도 안전장치를 달지 않고 판매해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했다. 결국 250만 달러의 손해배상금 이외에 1억2500만 달러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평결을 받았고, 그 후 기업이미지 손상으로 미국시장에서 실적이 급감했다.

작년에는 영국 최대 유통기업인 테스코가 상반기 영업이익을 2억5000만 파운드(약4400억 원) 부풀렸다가 들통이 나서 지난 6월 영국 소비자 만족도에서 8개 대형마트 중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있다. 결국 지난해는 1919년 창업이후 최악의 실적을 내서 세전 63억8천만 파운드(약11조2천억원)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경영정상화를 위해 한국 홈플러스를 국내 사모펀드 MBK에 팔기까지 했다.

 

폭스바겐 배출가스조작 사건은 단지 폭스바겐그룹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폭스바겐의 본사와 회사의 최대 공장이 들어서 있는 볼프스부르크(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서쪽으로 200km 떨어진 곳에 위치)의 경우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 주민 12만명 중 7만2000명이 폭스바겐 직원이며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폭스바겐 차량은 연간 84만대나 되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도 생산량 감소로 인한 일자리 축소가 불을 보듯 뻔하다. 폭스바겐의 공장이 있는 체코,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경제도 충격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연비 경쟁의 후유증이든, 시장점유율 경쟁 후유증이든 결과적으로 환경을 소홀히 한 책임은 너무나 무겁다는 교훈치곤 그 값이 너무 비싸다.

글 이동형 푸른아시아 홍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