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몽골] 10월 19일 월요일, 첫 눈 내림 – 이보람 단원

9월 말 울란바타르에 첫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돈드고비는 언제쯤 내릴까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눈이 내렸다. 정말 반가웠다. 초 저녁부터 내리던 눈은 새벽에도 계속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었다.


조림지도 하얗게 변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쁘게 단풍이 들었던 조림지가 하얗게 변해있으니 뭔가 새삼스러웠다.

황금 빛으로 예쁘게 물들었던 나무가 이제는 텅 빈 가지만 남았다. 겨울이 시작 됨.

어릴 때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눈이 내리기만을 기다렸었다. 눈이 내리면 비료 포대를 들고 바로 밖으로 나가 두꺼운 겨울 옷이 축축해질 때까지 신나게 눈썰매를 탔다. 우리집 골목 앞에 커다랗게 눈 사람도 만들어서 세워놓고, 눈이 얼어서 생긴 빙판길에서 아빠가 만들어 준 얼음 썰매도 타고 놀았다.

요즘은 다 커서(?) 그런지 눈이 반갑지가 않았다. 눈만 내리면 밖에 나가서 놀던 어릴 때와는 달리, 추우니 이불 속에만 있고 싶고, 움직이기가 귀찮았다. 내리는 눈이 잠깐 반가울 뿐, 옷이랑 신발이랑 다 젖어서 축축해지고, 길도 축축해져서 싫었다.

그런데 돈드고비에 와서 다시 눈이 반가워졌다. 언제 비가 왔는지 모를 정도로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10월 초에 보식을 했고, 지금 조림지에 몇 만 그루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데 너무 건조해서 걱정이었다. 그런데 눈이 내리니 어찌나 반갑던지. 눈으로 하얗게 뒤 덮인 조림지, 소복이 눈 쌓인 나뭇가지들을 보는데 얘네들 갈증이 해소 됐겠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

이 곳이 얼마나 건조한 곳인지, 그래서 이런 곳에서 나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매 순간 느끼고 있다. 아무리 관수 작업을 열심히 한다 해도 자연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특히나 관수 작업이 이뤄지지 않는 겨울 동안은 나무에게 눈이 꼭 필요하다. 작년 겨울에는 눈이 많이 안 내렸다고 하는데, 이번 겨울에는 부디 눈이 많이 내려서 동절기 가뭄으로 우리 나무들이 고통 받지(?) 않길.

나무들을 볼 때마다 부모의 마음이 된 것 같다. (자식이 없어서 진짜 부모 마음이 어떤지 확실히 모르지만ㅋㅋㅋ) 나무들이 마치 내 자식 같다.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면 우리 나무들 잘 자라겠다 싶어 반갑고, 잎이 안 나거나 말라가면 왜 이러나 싶어 걱정되고, 올해 심은 나무들이 뿌리 못 내릴까 걱정된다. 특히 가을에 보식한 나무는 잎 피우는 걸 내년에 내가 못 보니 더 걱정된다. 우리 나무들 자라는 걸 내년엔 못 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쉽고 아쉽다.

나무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할 계절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혹독한 겨울을 잘 견뎌내고 잘 자라난 나무들이 이번 겨울도 잘 넘겨줬으면 좋겠다.

우리 나무들 겨울 동안 잘 자고, 내년에 잘 클 수 있게 올해 눈이 많이 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