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몽골] 중간보고서 생활 편 – 이보람 단원
사업 중간보고서를 작성했다. 왠지 몽골 생활 중간보고서도 작성해야만 될 것 같다. 그래서 이번 달 에세이를 통해 지난 6개월의 시간을 되돌아봐야겠다.
1. 현지적응 완벽하게 완료!
3월에 몽골에 와서 어느덧 6개월째로 접어들었다. 6개월 만에 몽골과 조림지 나무들과 완전히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활동량이 적지 않은데도 살이 쑥쑥 빠지지 않는 걸 보면 이곳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 같다. 집도 이젠 정말 내 집 같고, 동네도 우리 동네 같다.
거의 매일 같은 반찬에(김치 참치 볶음, 양파 볶음, 피망 볶음….ㅋㅋㅋ) 라면이나 인스턴트 식품을 주로 먹지만 그래도 나름 삼시세끼 잘 먹고 있다.
술을 좋아하지만, 여기서 술은 거의 안 마시고 있다. 한 달에 맥주 한 두 캔 정도? 대신 콜라에 제대로 중독됐다. 하루도 빠짐없이 콜라를 마신다. 친구가 위에 구멍 난다고 겁을 줘서 건강이 조금 걱정되지만, 퇴근 후 마시는 시원한 콜라 한 캔은 정말…………짱이다ㅠㅠ
500ml 패트 병 콜라보다 330ml 캔 콜라가 더 맛있다. 신기한 건 패트 병 콜라보다 양이 더 적은 캔 콜라가 100-200?정도 더 비싸다. 사치 좀 부려서 100? 더 비싼 캔 콜라 사 마신다.
어쨌든 여기서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내고 있다. 아직 몽골에서 남은 시간이 많이 있는데도, 한국에 돌아갔을 때 향수병 생길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왼쪽: 이젠 땅 바닥에 주저앉아 먼지 속에서도 도시락 잘 먹음
오른쪽: 전통 의상 맞춰 입고 동네 축제도 신나게 즐김
2. 날씨적응은 아직.
몽골 생활을 이야기할 때 날씨를 빼먹어서는 안 된다. 처음에 몽골에 왔을 때 걱정했던 것보다 안 추웠다. 그런데 본격적인 추위는 현장에 파견되고 한 달이 지난 5월부터 시작됐다. 몽골의 봄 날씨는 유목민들도 알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변덕스럽다더니 정말 그랬다. 4월말, 관수작업 준비를 시작하면서 좀 따뜻해진 것 같아 패딩을 빨았는데 옷이 마르기가 무섭게 다시 추워졌다. 눈보라도 몇 번 몰아쳤고, 날씨 때문에 작업을 중단 한 적도 꽤 있다. 몸이 덜덜 떨리고 손 끝, 발 끝, 심지어 귓구멍까지 시렸다. 땅에서 새싹이 자라나고 나무에서도 잎이 나고, 직원 분들도 봄이라고 하니 봄은 봄인 것 같은데 한국의 겨울보다 더 추웠다.
변덕스러운 날씨 말고도 5월이 더 춥게 기억되는 이유가 또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기는커녕 추워죽겠는데 5월부터 숙소 난방이 끊겼다! 우리는 중앙난방 시스템이라 겨울에 직접 석탄을 떼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난방이 끊기면 불을 피울 수 없으니 추우면 추운 대로 살아야 한다. 5월엔 일 마치고 집에 오는 게 걱정될 정도로 집이 추웠다. 아래 위로 몇 겹씩 껴 입고 자도 덜덜덜 떨렸다. 추워서 자다가 한 번씩은 꼭 깼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요즘 날씨가 조금씩 쌀쌀해지기 시작하자 방도 따라서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 집에 다시 난방이 들어오기 전까진 추운 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 추위를 다시 겪어야 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무섭다.
4월부터 한결 같은 패션, 한 여름에도 늘 가방에 매달고 다니는 패딩(여름에도 입어야 되는 날이 있음),
출퇴근 길 개 때문에 항상 가지고 다니는 막대기
3. 휴가도 다녀옴.
7월 초에는 러시아 국경과 마주한 도시인 셀렝게로 기차를 타고 휴가를 다녀왔다. 침대가 있는 밤기차는 처음 타봤는데 정말 좋았다. 셀렝게는 큰 침엽수림도 있고 강도 있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특히, 지금까지 봤던 몽골의 풍경과는 다른 새로운 풍경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휴가가 몽골의 축제 공휴일과 붙어 있어서 셀렝게 여행이 끝나고 테렐지 국립공원도 다녀오고, 밤기차를 또 타고 몽골 제2의 도시 에르데네트에도 다녀왔다.
밤 기차를 4번이나 타고, 별 보러 간다는 테렐지에서 1박까지 했는데도 밤만 되면 날씨가 계속 흐려서 그 유명한 몽골의 밤 하늘을 빽빽하게 수 놓은 별들과 은하수를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몽골 생활 6개월 차, 남들 다 봤다는 별이 가득한 몽골 밤 하늘을 난 아직도 못 봤다.
파견되고 현장으로 처음 내려올 때, 저녁에 출발하니 밤 하늘의 별들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설렜다. 그런데, 그 날 날씨가 흐리고, 눈이 엄청 내려서 별을 보지 못했다. 이 날이 내가 몽골에선 별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시작을 알리는 날이었을까? …ㅠㅠ
왼쪽, 바이칼 호수까지 흘러가는 셀렝게 강을 바라 보며
오른쪽, 작은 모래 언덕에서(모래 사막에 갔다 온 것처럼 보이게 찍으려고 노력함)
4. 아직까진 제자리걸음 중.
지난 6개월의 시간 동안 내가 크게 성장한 것 같진 않다. 처음 가지고 왔던 초심도 많이 잃었다. 크게 동기부여가 돼서 일을 시작했지만 그 동기는 사라진 채,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일어나서 출근하고, 퇴근하고 저녁 먹고 업무일지 작성하고 씻고 잔다. 다음 날도 이 생활이 반복된다. 이런 일상에 익숙해져서, 그냥 익숙해진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매일 아, 이거 해야 되는데 생각만하고 행동에 옮기진 않는다.
사실 현장에 내려오니 내가 무엇을 해야 될 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더 모르겠다. 처음엔
내 역할에 대해 계속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그런 고민이 계속 되면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괴롭히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일상에 집중하기로 하고, 외면해 버렸다. 그래서 이곳 생활엔 잘 적응을 했지만, 마음 한 켠이 늘 뭔가 불편했다.
이런 불편함이 계속되면 나중에 내가 몽골에서 무엇을 했을까? 내가 이 곳에 필요한 존재였을까? 변화에 손길을 보탰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 것만 같다. 힘들더라도 나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선 나를 괴롭힐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지난 6개월은 제자리 걸음이었지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앞으로 남은 6개월은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처음 출근하던 날, 1조림지 앞에서 찍은 사진. 이 날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