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몽골] 소풍을 떠나요 – 이누리 단원
올해 몽골은 가물었다. 올 겨울은 눈이 내리지 않았고, 비가 하도 변덕스럽게 와 일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봄에는 비가 조금도 내리지 않았다. 특히 물이 한창 필요한 식재시기에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고, 이에 대한 걱정일까 주민들이 기우제도 지내고 소풍이나 갈 겸 보르항가이를 가자고 했다. 휴일이었지만 혹시 안 간다고 하면 주민들이 섭섭해 할까, 나무도 많다는데 몽골 숲은 어떨까, 의무감 반 궁금함 반으로 소풍에 함께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신칠링에서 북쪽으로 2시간 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려 보르항가이로 향했다.
보르항가이로 향하는 길, 동쪽으로 차로 10분 정도 가자마자 하르간은 간간히 보이기 시작했고, 북쪽으로 향하자마자 하르간은 자취를 감추었다. 다신칠링이 몽골 사막화의 최전선이란 말을 비로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하르간이 사라진 자리는 낮게 자란 풀들이 차지했고 몽골에 도착하기 전 상상했던 몽골 초원의 풍경이 펼쳐졌다. 이전 날, 비가 와서 얕게 고인 물구덩이에 말이며 소며 여러 가축들이 모여든 풍경을 지나며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높은 나무로 덮인 산이 눈에 들어왔다. 이전까지 봐왔던, 모래뿐인 민둥산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비도 잘 내리지 않는 곳에 어떻게 저렇게 나무가 높이 자랄까 싶을 정도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나무들이 산에 빼곡했다. 내가 봐왔던 몽골과는 다른 몽골, 단순한 감탄을 넘어 경이로움까지 느껴지는 관경이었다.
높게 자란 나무로 뒤덮인 보르항가이
한참을 감탄하고 있을까, 조금씩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 지역주민들의 목재공급을 책임지는 곳인지 군데군데 밑동만 남은 나무들이 보였다. 두세사람은 족히 앉을 수 있는 밑동의 넓이에 잘려나간 나무의 세월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위해 필요한 단면이겠지만, 혹시나 무분별하게 벌목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이 곳마저 몽골의 다른 흔한 산처럼 민둥산이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무 사이사이로 보이는 잘려나간 나무의 밑둥
그런데 뒤이어 보인 관경은 이전까지의 걱정 따위는 하찮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높게 솟은 수많은 나무들에 잎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검은 나무기둥만이 숲을 이루어 산을 뒤덮고 있었다. 지구온난화와 이 땅의 사막화가 땅의 생명을 앗아가는 생생한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집단 고사한 나무로 뒤덮인 보르항가이의 산
단순히 적은 강수량만으로 이 곳의 수많은 나무들을 자라게 하는 데에는 부족했을 것이다. 이토록 높은 숲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수분의 공급이 필요했을 것이며, 그러한 역할은 한겨울 내리는 눈이 감당했을 것이다. 겨울이 긴 몽골의 기후 특성으로 한겨울 내리는 눈은 오랜 시간 숲에 수분을 공급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가 점점 따뜻해지고 몽골의 겨울이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했다. 눈이 수분을 공급할 수 있는 기간 또안 조금씩 짧아졌을 것이며, 결국 이 숲 지대에 나무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 만큼의 수분도 공급하기 힘들어졌을 것이다. 결국 이 지역의 나무들은 대량으로 말라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땅은 몽골의 초원에선 보기 힘든 나무들이 높게 숲을 이룰 수 있을 만큼 다른 지역보다 강수량이 풍부했을 것이다. 이에 비가 필요한 다른 지역에서 와 기우제를 지내고 이 지역만큼 자신의 지역에도 비가 오기를 빌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지역의 몽골 주민들이 기우제를 지내러 올 정도로 수분이 풍부했던, 이 땅에 기우제가 필요해졌다.
강과 호수가 마르고 초원이 사막이 되는 것만이 사막화가 아니다. 숲의 나무가 말라가고 점차 초원으로 변화하는 것 또한 지역이 건조해졌다는 증거이며 넓은 의미의 사막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