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몽골] Coming home_48% – 김한솔 단원

몽골에 새학기가 시작됬다.

몽골에서 대표하는 백화점인 이흐 델구르 2층 중앙엔 새학기 맞이 학용품 세일품목들이 차지했다. 세일 품목들을 집어가는 학부모들의 손들이 분주했다. 하늘마을 아이들에게도 역시나 새학기가 찾아왔다. 그 많던 아이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사이에 하나둘 사라져갔다. 중, 고등학생 정도 나이의 친구들은 자기가 언제 학교로 가는 지를 우리에게 예고하며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하늘마을이 점점 고요해지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하루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가나를 한번 안아주었다. 차가나에게서 향기가 났다. 평소에 나는 차가나만의 향과 다른, 막 씻은 뽀송뽀송한 비누냄새가 났다. 난 차가나에게 “오~ 차가나 씻었구나~? 오늘 어디가?”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차가나 아버지, 앙카팀장님이 대답하신다.

“오늘 유치원에 간다.”

난 순간 흠칫하고 만다. 애써 “우와~ 유치원? 좋겠다~”하며 웃으며.. 그리곤 방학 전까진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지못해 확인받길 계속했다.

자기도 자신이 유치원에 가는 것을 눈치 챈 차가나는 나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질 않는다. 내가 좋아서인지, 유치원에 가기 싫어서인지 몰라도(후자겠지만.. 하하) 울고불고 날 찾으며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려고만 한다. 그 모습에 조금 찡~해졌다. 난 얼른 유치원 가야지~ 하면서도 속으론 가지마 가지마~ 불렀다. 내 몸에서 떼어내자 결국 차가나는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처럼 큰 게르 바닥에 누워 뒹굴기 시작한다.

 

에구, 우리 차가나. 애기 맞네, 애기야. 

결국 난 차가나를 데리고 앙카팀장님 집에 같이 가게 되었다. 차가나와 언니 게렐레의 유치원 입학 준비를 도왔다. 우리 마을의 마스코트들이 잠깐 바야르테하겠구나. 슬펐다. 한편으론 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차가나를 바라보며 난 어릴 때 어땠더라…? 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릴 때의 나는 떼를 쓴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고 힘들다고 칭얼대지도 않고 편식하지도 않고. 엄마가 덕분에 (그것만큼은) 편했다고 한다. 또 난, 중학교 때부터 집에서 멀리 있는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기숙사 생활을 했다. 일부러 집에서 멀리간 것이다. 기숙사에 있는 동안도 (자랑은 아니지만) 부모님께 연락을 자주하지 않았다. 한 달에 한번, 심하게는 한 학기에 한번 정도 집에 갔다오곤 했다. 집을 그리워하지 않은 것인지 집을 생각은 했지만 연락의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인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몽골에 와서도 난 여전했다.

집을 그리워하지 않고 그래서인지 연락도 잘 안했다. 에르덴으로 파견된지 한 달이 지나서야 우리 부모님은 내가 지역으로 간 것을 알게 되었다.(참 불효녀다.) 집에 대한 느낌도 1년간 나에게 온전한 개인 공간이 생기면서, 더욱 나의 집은 한국 집이 아닌 하늘마을, 에르덴 숙소가 되었다. 숙소에서 하루종일 지쳤던 내 몸과 마음을 온전히 쉬게 할 수 있었다.  

집에 관한 이런 노래가사가 있다. 너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곳. 너가 언제나 환영받는 곳. 너가 하루 모든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곳. 세상이 날 주저앉게 만들 때는 집으로 날 데려갈 길을 찾게 된다. 라고 집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런 집은 나에겐 에르덴 숙소였다. 

허나 일정이 끝이 안보일정도로 꽉꽉 채워져 더 이상 채울 곳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아지자 정말 날 집으로 데려갈 길을 찾게 되었고, 진짜 집이 무엇인지 보였다. 바로 가족이었다. 집이라는 공간적 개념만으로 내 몸을 뉘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내 마음까지도 온전하게 뉘일 수 있는 곳은 가족이란 집이었다. 나의 안식처가 한국에 있을 때는 그렇게나 가까이 있는지 몰랐을텐데… 지금에서라도 알게 되고 가족에 대한 관심 정도가 변화해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몽골 땅에 오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임에 몽골과의 인연에 또 한 번 감사하게 되었다.  

 

진짜 집이 한국에 있지만, 진짜 집이기에 멀리서도 날 지켜봐주고 가만히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 또한 큰 향수병 없이 이곳 생활을 잘 이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 돌아가면 반겨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하며 자연스레 날 받아줄 나의 집을 생각하며 ‘그러니까 이곳에서는 아무 생각말고 지금 이 순간순간들을 온전히 느끼고 가자!’ 되뇌며 하루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있고 앞으로도 무사히 보낼 것이란 확신이 든다.  

 

그러니 나의 집아, 건강히 있어주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