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몽골] 킁킁,이게 매연냄샌가 보다 – 이누리 단원

코 막힌 자들의 도시?

몽골 시각으로 오후 10시 30분. 4시간 정도의 비행 끝에 우리는 칭기즈칸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몽골에서 1년 동안 살아가기 위해 챙겨온 수많은 짐들을 찾고 겨우 공항에서 빠져나오니, 코끝을 때리는 매캐한 공기가 느껴졌다. 알싸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느낌. 한국에서 미세먼지가 심할 때와도 비교조차 되지 않는 불쾌함이었다. 동시에 이런 곳에서 살다가는 기관지부터 폐까지 남아나는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또한 ‘이런 공기를 마시고 살아가는 울란바타르 시민들은 과연 멀쩡할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멀쩡할 리가 없다. 산업혁명 당시 런던의 스모그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지 않았던가? 그처럼 울란바타르의 매연, 몽골어로 ‘오타’라 불리는 이것도 울란바타르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일지도 모른다. 바람이 많이 불어 ‘오타’가 적은 톨강 주변 아파트의 가격이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비싸다는 것은 ‘오타’가 울란바타르 시민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것은 ‘오타’가 겨울철에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산업혁명 당시 런던의 수많은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으로 인해 발생한 스모그와는 달리, 울란바타르의 ‘오타’는 도시 외곽의 빈민들이 매서운 겨울을 버티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울란바타르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울란바타르는 애초에 인구 50만 명이 거주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계획도시이자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내에 조성된 도시였다. 때문에 도로를 시작으로 상하수도, 전기시설, 도시 중앙난방까지 모두 그에 맞춰서 설계되었다. 하지만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든 유목민들이 도시 외곽에 게르촌을 형성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도시 중앙난방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게르촌의 거주민들이 추운 겨울을 버티기 위해 질 낮은 석탄이나 폐타이어와 같은 쓰레기를 난방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게르촌에서 나오는 매연이 바람이 잘 불지 않는 울란바타르의 분지지형과 맞물려 ‘오타’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들이 도시로 간 이유 

게르촌으로 유입되는 유목민들로 인해 현재 울란바타르의 인구는 공식등록인구 130만, 추정치 150만에 육박하고 있다. 50만 인구 계획도시에 150만의 인구가 모여 있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도시문제. 심각한 교통체증, 높아져가는 실업률, 악화되는 치안, 식수원문제 등도 마땅히 고민해봐야겠지만, 여기서는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왜 유목민들이 울란바타르로 와서 도시 빈민층이 될 수밖에 없을까?’이다. 

위의 의문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미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라는 뜻이다. 유목민들은 지금도 울란바토르로 오고 있으며, 게르촌은 확대되어 울란바타르 주변의 산 정상을 넘어 반대편 산등성이까지 게르로 뒤덮이고 있다. 유목민들이 울란바타르로 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지속되는 한, 울란바타르의 게르촌은 계속 확대될 것이고 어쩌면 한반도의 9배가 넘는 몽골의 광활한 영토에서 유목민들을 찾아보기 힘들어 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울란바타르의 ‘오타’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 울란바타르의 각종 도시문제가 심화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유목민들의 울란바타르 이주의 원인은 ‘몽골 초원의 사막화’이다. 얼핏 그림이 그려지는 이야기이다. ‘몽골 초원이 사막화되었으니 가축들은 먹을 것이 없고, 결국 굶어 죽고 생계수단이 사라진 유목민들이 살기 위해 도시로 오는 건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대체로 맞는 이야기이긴 하나 위의 문장은 비약이다. 아무리 몽골의 사막화가 심각하다고 해도 수십만에 달하는 유목민들의 가축들이 굶어죽을 정도로 몽골의 국토가 사막이 되지는 않았다. 위 문장에는 한 가지의 인과관계가 빠져있다. 그것은 몽골의 매서운 겨울 추위이다. 몽골의 겨울은 매우 추울뿐더러 몇 년마다 한번씩 ‘조드’라 불리는 평소보다 더욱 강력한 겨울추위가 찾아온다. 때문에 가축들은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살을 찌워 겨울을 대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막화되는 몽골 초원은 가축들이 충분히 살을 찌울 만큼의 풀을 제공하지 못하였고, 때마침 닥쳐오는 ‘조드’는 수백에서 천만마리, 또는 그보다 더 많은 가축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즉 가축들은 굶어 죽기 보다는 얼어 죽는다고 봐야한다. 가축들이 얼어 죽으니 생계수단을 잃은 유목민들이 살기 위해 울란바타르로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지구온난화의 진실공방 – 우리 때문 맞아 

몽골 사막화의 원인은 무계획적인 목축, 과도한 광산 개발 등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이다. 강수량의 변화와 지표열의 상승, 그에 따른 건조화가 몽골 전 지역에 광범위한 사막화를 가져오는 이유이다. 여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다면 지구온난화는 왜 일어나는가?’이다.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발생하는 것을 믿는 첫 번째 부류의 사람과, 이를 믿지 않는 두 번째 부류의 사람, 그리고 지구온난화 자체를 모르는 사람까지. 마지막 부류의 사람들은 제쳐두고, 첫 번째 부류와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각기 금융과 국가, 기업들을 등에 업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잘 알려진 첫 번째 부류의 주장은 생략하고, 두 번째 부류의 주장을 소개하자면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지구 온난화는 정부지출을 확대하기 위한 금융권의 대규모 프로젝트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화석연료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업가들이거나, 관련 종사자라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이 주장에는 한 가지 큰 맹점이 있다. 아무리 지구의 기온상승이 지구생애주기에 있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라도, 자연이 기온상승에 적응하는 속도를 못 따라갈 정도로 빠른 기온상승이라면, 이는 비정상적인 기온상승이라는 것이다. 

지구의 기온과 기후가 항상 같았던 것은 아니다. 지구가 지금보다 훨씬 더웠던 시기도 있었고, 빙하기라 불리는 매우 추운 시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지구에는 항상 생물이 살고 있었다. 그럴 수 있던 것은 지구의 기후가 매우 천천히 장기간에 걸쳐 변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된 기온에도 적응할 수 있는 식물이 자라나고, 그에 알맞은 생태계가 구성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지금 몽골에서 나타나는 사막화는 앞선 기후변화와는 다르다. 짧은 시간 안에 급격한 기온상승이 일어났고, 생태계가 변화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몽골을 비롯한 중앙아시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는 기온 상승으로 인해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빼앗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 앞에서 ‘기온 상승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그들이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 해’라고 기대하며 관망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까? 그보다는 모두가 함께 책임을 나누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힘써야 하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앞선 주장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데 아무런 죄책감을 갖지 않기 위한 회피적 동기의 발로가 아닐까? 화석연료에서 이산화탄소가 나오고, 이산화탄소가 기온상승을 일으킨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정리하자면, 기후변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며, 그로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해결해야할 문제도 아니다. 오히려 그 고통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있는 선진국들, 지금도 막대한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따른 문제를 해결해야할 책임이 있다. 단순한 고통분담의 차원이 아니라 마땅히 이행해야할 책임인 것이다. 

다시 울란바타르로 돌아가자. 산업혁명 시기 런던의 스모그가 자본가들의 이익과 욕심에서 파생된 현상이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은 온전히 당시 런던의 자본가들에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울란바타르의 ‘오타’가 울란바타르의 도시 빈민들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온전히 그들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도시 빈민들은 몽골의 사막화에 의해, 몽골의 사막화는 지구온난화에 의한 것이라면, 조금 비약해서 울란바타르의 ‘오타’에 따른 책임은 우리 모두가 지어야 하지 않을까? 울란바타르의 시민들은 과거와 현재의 우리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