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몽골] 2014년을 돌아보며 – 바가노르 백미래 단원

3월 몽골은 북한 같았다. 북한에 가보진 않았지만 북한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도시가 온통 잿빛이다. 사람들의 표정은 차갑고 군인과 경찰의 제복은 아직도 공산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몽골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북한사람도 만났다.

4월 드디어 기다리던 바가노르에 왔다. ‘미소’라는 예쁜 뜻을 가진 ‘미쏄’이라는 몽골 이름을 얻었다. (사실 처음엔 왜 미국이름을 지어줄까? 라고 생각했지만 몽골이름이 맞다.) 바가노르는 조그맣고 조용한 살기 좋은 곳이다. 마음에 쏙 든다.

5월 아직도 춥다. 한국의 5월과 비교할 수 없다. 5월인데도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진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조림장이 겨울왕국이 되었다.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어서 일을 쉬었다. 지겨운 패딩을 벗고 싶다. 도대체 여름, 아니 겨울이 언제 지나갈까?

6월 여름이 언제 올까 했는데 봄을 뛰어넘어 바로 여름이 왔다. 점점 초원은 푸릇푸릇해지고 들꽃들이 널리 피었다. 그리고 드디어 귀가 트고 말이 트기 시작한다.

7월 몽골이 가장 아름다운 달이다. 초원은 눈이 부시게 푸르고 하늘은 새파랗다. 그리고 나담이 있다. 나담에는 볼거리가 가득하다. 사람들은 델을 입고(나도 이 날을 위해 델을 맞췄다.) 자기의 말을 자랑하려는 듯 여러 마리의 말들을 끌고 다닌다. 그들은 말과 마치 하나인양 자유자재로 말을 탄다. 그리고 호쇼르와 마유주를 잔뜩 먹을 수 있고 씨름과 말 경주를 구경한다.

파트너가 가고, 한참 아이들의 장난에 시달려 지칠 만큼 지쳐갈 때쯤 통가 아주머니가 아기 고양이를 데려다 주었다. 사실은 혼자 있어서 고양이를 키우는 게 어떨지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울란바타르까지 가서 데려다 준 도토리!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8월 8월에는 이곳저곳 많이 놀러 다녔다. 홉스굴로 휴가를 갔다. 프로펠러가 달린 소형 비행기를 난생 처음 타봤다. 생사를 하늘에 맡기고 잠이 든다. 무릉에서 장하이까지 푸르공을 타고 들어가는데 몽골의 초원과 하늘을 지겹도록 봐서 아무런 기대도 없이 왔던 나와 함께 간 언니도 깜짝 깜짝 놀랄 만큼의 장관이 펼쳐진다. 배도 타고, 3시간동안이나 말도 타고, 게르에 불도 지펴보고, 홉스굴에서 잡은 물고기도 먹었다. 특히 밤하늘의 별은 최고다. (여행 내내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말을 타려다가 비가 와서 가이드 아저씨 댁에 들어갔는데 그 집 감베르가 유별나게 맛있어서(한국의 호떡 맛이 났다.) 일행이 2판이나 해치우고 왔던 기억이 난다. 

몽골에서 여행 다니고 관광하는 것도 좋지만, 직접 유목민 가정에 가서 말도 타고 가축들도 쳐보고 음식도 먹어보는 것도 재밌다. 나도 시골에 말을 타러 갔었다. 역시 야생마는 제멋대로다. 가서 양과 염소를 쳐봤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주인이 열심히 양과 염소를 모아놓으면, 내가 가면 모세의 기적처럼 양과 염소가 반으로 갈라진다. 말을 타고 양과 염소를 치던 아이는 그 장면을 보고 깔깔깔 웃는다. 아저씨들과 마유주를 함께 마시는 건 끝이 없다. 작별 선물로 아롤도 잔뜩 받았다.

헤를렝 강에 가서 하루를 묵고 또 테를지에도 놀러갔다. 점점 초원이 노래져간다. 여름이 끝나가는 것 같아 울적하다.

9월 조림사업이 마무리되어 가고, 날씨도 꽤나 쌀쌀해졌다. 또 시골에 가서 말을 타고 싶었다. 어디로 가면 좋을지 물색하다가 이번엔 헤를렝 강가로 갔다. 말을 타기엔 추울 텐데 괜찮겠냐는 말을 만류하고 말을 타다가 친구와 함께 그날 바로 감기에 걸렸다. 이번엔 말을 타고 직접 양과 염소를 쳤다. 말을 타니까 역시 신난다. 그리고 새삼스럽지만 몽골 사람들은 힘이 정말 센 것 같다. 큰 염소는 엄청 큰데(초등학생만한 것 같다.), 그 염소를 한 손으로 번쩍 번쩍 들어 올리는 걸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 염소들은 슬프게도 팔려가 고기가 된다.

10월 조림사업은 마무리되고 대한항공 보식이 한창이다. 대한항공 보식도 나쁘지 않다. 또래 몽골친구를 사귈 수 있었고, 우리와 같은 일을 하는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이 쯔음 나는 무박 3일 일정으로 셀렝게 기차여행을 다녀왔다. 기차는 대륙느낌이 많이 나서 어쩐지 멋지다. 그리고 깨끗하게 잘 되어있다. 조금 느리다는 단점이 있지만 야간열차를 타고 침대에 누워서 반짝이는 별을 보는 낭만이 있다. 셀렝게에서는 여러 강이 모이는 것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데 아주 절경이다. 고비사막에는 못 가봤는데허여링 엘스라는 사막 지형도 볼 수 있어서 신기했다. 생각보다 발이 푹푹 빠지고 내 취향은 아니었다.

10월에는 기쁜 소식이 있었다. 강죽아저씨가 결혼을 해서 집에 초대 받았다. 몽골에는 보통 결혼식을 하지 않고 식당이나 집에서 사람들을 불러 잔치처럼 결혼을 한다고 한다. 차강사르때 먹는 커다란 양고기와 빵, 아롤, 보쯔 등 엄청나게 많은 음식들과 술을 전부 먹을 수 있었다. 아저씨 아내 분은 어떤 분일지 기대했는데 나와는 구면이었다. 역시 바가노르는 좁다!

11월 대한항공 보식이 끝나고 겨울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나는 여름부터 아이들 몇 명과 한국어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주민 분들과도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12월 일 년의 마지막 달인만큼 12월은 특별하다. 아이들은 저마다 학교에서 신질을 맞아 공연을 한다. 나 또한 아이들이 신질을 기념해 노래를 하고 춤추는 것을 보았다. 자야의 신질 파티를 위해 머리와 화장을 해주기도 했다. 자야는 15살인데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음식 하나씩을 해가서 파티를 한다고 한다. 신질 당일, 어느 슈퍼를 가든 사람들이 가득하고 케익이 불티나게 팔린다. 슈퍼에서는 집집마다 보드카를 몇 병씩 쓸어 담아 간다. 31일 날은 어느 집이나 맛있는 음식과 술을 가득 준비하고 서로에게 새로 오는 해를 축하하고 기념한다. 서로 새해를 축하하느라 아주머니들 전화가 쉴 틈이 없었다. 아마 한국의 31일보다는 훨씬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듯했다. 이 날은 종미언니와 함께 바가노르에 와서 오그나 아주머니 댁과 나야 간사님 어머니 댁에 초대받아 고기, 각종 샐러드, 보쯔, 과일, 케익, 술 등을 실컷 먹었다. 생전 처음 소의 혀를 먹은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12시가 되면 밖에서 폭죽이 터지고 집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새해를 축하한다. 신질링 민드 후르기!

그리고 이제 1월도 저물어가고 있다. 1월에는 내 생일도 있었고 또 처음으로 소매치기를 당하기도 하고 역시 정신없이 지나 간 것 같다. 한국 갈 날이 딱 2주가 남은 지금, 지나고 보니 힘들었던 기억은 싹 잊히고, ‘더 잘할 걸.’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최선을 다 했으니 후회는 없다. 한국에 있었다면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을 텐데 이 먼 곳에서 만나 인연이 되었다. 나에게 이 시간들이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된 만큼 그들의 삶에도 내가 기억되길 바란다. 또 언제나 혼자 지내는 나를 보살펴주는(주었던) 바가노르 사람들에게 또 함께 고생했던 다른 지역 단원들에게, 울란바타르에서 고생하는 활동가분들에게, 몽골 그것도 바가노르에서 일 년을 보낼 기회를 준 푸른아시아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올해 못 채운 부분은 내년에 그리고 내 후년에 조금 씩, 조금 씩 채워지기를 바란다. ps. 이번 년도에는 어떤 분이 바가노르와 인연이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행운이시네요. 건강하고 무탈한 1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