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몽골] 조림사업 회고록 – 에르덴 김서현 단원

<객관식 문제, 배점2점>

지금의 내가 한 주 전의 나에게로 돌아가 조림사업이 끝났어- 라고 말한다면, 일주일 전의 나의 예상 답안은 ?
1)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도 안돼 2) (썩소를 지으며) 거짓부렁 3) (코웃음치며)그럴 리가.

그러나 우매한 일주일 전의 김서현아, 듣거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조림사업은 끝났다! 

조림사업 끝난 지는 벌써 이틀이 되었건만, 출근하는 금요일 오늘에서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잘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실감이 났다. 그 바쁜 기간 동안 조림사업이 끝난다는 말은 나에게 허황된 약속일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 희망고문은 얼마 전의 나에게 온갖 꿈을 부풀어 넣었다. 조림사업 끝나기만 하면! 겨울사업 기간만 되면! 나는 보다 자유로운 -거의 슈퍼맨에 가까운-몸이 되어 이것도 저것도 요것도 다~아 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줄 알았는데 막상 현실로 다가오자 지나치게 무덤덤한 것에 얼떨떨함을 느끼고 있다. 물론 오늘 아침 알람을 무시하고 좀 더 전기장판에 몸을 비비적거렸다던지, 느긋느긋하게 티타임을 가지며 창문을 바라보는 소박한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직도 왠지 내일 다시 출근해야할 것 같은 쓸데없는 의심을 하면서 조림사업 끝난 기념으로 이번 에세이는 그 간 있었던 일들을 산발적 에피소드로 적어보려 한다.

#!

때는 4월 중반. 말도 못하고 일적으로도 자리 잡으려고 아등바등할 때다.

당시 우리의 일은 구덩이 파는 것이었는데, 4월 중반이라지만 겨울인 몽골의 땅은 얼어있었고, 사무직에 가까운 대학생이 갑자기 하루 8시간 지름60cm,높이60cm의 나무 구덩이 파는 것은 고역이었다. 삽질 한번 할 때마다 내가 이렇게 1년을 버틸 수 있을까부터 온갖 잡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인간은 또 적응의 동물. 이튿날은 좀 할만하니, 오올 역시 젊음이 좋구나 뭐 이러면서 2주일 가량 나무 구덩이를 팠는데 웬걸. 이제 남자들은(+젊은사람들은) 가로 2m, 세로5m, 높이1m의 10세제곱미터 사이즈의 저수조를 파야한다고 했다. 그렇게 나, 언니, 앙카팀장님 이렇게 3명이서 한 팀이 되어 파는데, 정말 죽겠더라. 처음 한두시간은 기합으로 했지만, 구름은 끼고, 눈발은 종종 날리고, 구덩이가 깊어지는 것에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흙을 위로 퍼 올려야 함에 절망했다. 아 대박. 나무 구덩이 팔 때가 좋았었다. 그 땐 배가 불렀지-라는 생각을 하는데, 나기간사님과 수혜팀장님이 방문했다. 팀장님께서 많이 힘들죠? 라며 단원들은 주민직원들과 다르다며 팀장님들에게 적당히 시키라는 그 엇비슷한 말에 눈물이 찔끔 났다. 그냥 별말 아니었는데 내 어깨죽지의 파스향과 눈발이 날리는데 혼나는(?) 팀장님들의 모습, 그리고 주린 배 등이 얽혀 그냥 울먹했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나니 또 저수조 파기에 적응하였고, 이 한 달 덕에 나머지 그렇게 길던 조림사업을 마무리 지을 수 있던 체력을 길렀던 것 같다. 그럼으로, 첫 한달은 빡세고 적응하는데 힘들어도 이 악물고 해야 나머지 6개월이 편합니다-란 교훈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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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7월초. 두 번째 에코투어인 동국대 팀을 받았을 때다. 몽골에 온 지는 4개월, 에르덴 촌구석(히힛)으로 온지는 3개월 째였다. 나는 이제 막 몽골어를 더듬거리고 이제 막 조림장을 파악할 무렵이지만 투어팀들에게 나는 항상 그곳에 있던 사람처럼 보였으리라.

부총장님이 갑자기 선물이라며 두 손을 내밀라고 했다. 손등을 보인채로 주시기에, ‘음 사탕이거나 쓰레기거나 하겠군.’하며 손을 내미니 거기서 메뚜기가 뛰어올랐다. 꺅!

놀래는 날 보시며 여기서 살면서 이런 걸 무서워하면 쓰겠냐며 웃으시는데 나름 서울여자사람인 나는 울컥했다.

“저도 여기 온지 3개월밖에 안되었는데요!”

투어참가자들이 갑자기 깨달은 듯 했다. A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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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3월 말. 에르덴에 살러 가기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사전 답사(?)를 갔었다. 당시 나는 부끄럽게도, 몽골어 수업을 듣고는 있었지만 벙어리에 까막눈이었다. 앙카팀장님 집에 들어가 차를 대접받는데 옆에서 메에-소리가 들렸다. 갓 태어난 새끼염소였다. 겨울에 새끼들은 얼어 죽을 수 있으니 게르 안에 둔 것이다. 신기해서 가까이 다가가 쪼그려 앉아있었다. 앙카팀장님 애기 두명(각각 4살, 3살)이 같이 옆에 쪼그려 앉았다. 왠지 귀여운 아이들에게 괜스레 나도 몽골어를 뽐내고픈 맘에 새끼 염소를 검지로 가리키며 야마(염소)! 라고 말하며 뿌듯해했더니 3살 차가나가 진지하게 나를 보며 말했다. “이슄(새끼염소)”

본전도 못 찾았다. 그 이후 잠시 본인은 몽골어에 대한 의지를 잠시 불태웠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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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뭉크터거 아주머니가 그러셨다. 조림사업 끝나면 우리집에 놀러오라고. 작년 단원분들은 터거 아주머니네 감자호쇼르가 그렇게 맛있다 해주셨다며 우리에게도 그 호쇼르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셨다. 무척 기뻤다. 그러나 그 이후로 조금 씁쓸한 일이 있었고, 우리는 어욘토야네 감자호쇼르를 먹으며 뭉크터거 아주머니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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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에피소드에서도 썼지만, 4월 한 달 삽질을 빡세게 하니 웬만한 체력을 길렀다. 물론 삽질도 그럭저럭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갈고 닦은(흐흐흐) 삽질 실력으로 많은 일들을 했다. 그 중에서도 기억나는 나의 삽질 결과물은 첫째로는 컨테이너 옆의 포플러 나무 구덩이를 넓혀놔서 내 키 조금 넘던 나무가 조림사업 끝나는 지금 정말 훌쩍! 컸다. 내년도, 내후년도엔 정말 부쩍 클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둘째로는 양묘장 B구역과 비닐하우스 사이에 길을 닦았다는 것이다. 사실 그 곳은 잡초와 포플러가 무성한 곳이었는데, 정말 내가 한 일이지만, 정말 깔끔하게 길을 닦아 놓았다. 이 길은 짧지만, 양묘장 쪽과 비닐하우스 옆쪽의 포플러가 푸릇푸릇하게 잘 커 있어서 길을 닦은 이후 방문객들을 이 곳으로 모셔 설명을 많이 했다. 그냥 이렇게 씀으로써 괜스레 내가 했다고 자랑하고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다른 단원들이 더 예쁘게 가꿔줬으면 하는 마음에 얼굴 새빨개지면서 썼다. 


쓰고 나니 진짜진짜 조림사업 끝난 걸 실감 중이다. 이외에도 조림사업기간의 자잘한 에피소드들은 정말 수없이 많다. 힘들었지만 기뻤던 일도, 슬펐던 일도, 씁쓸했던 일도 모두 예쁘게 포장된 채로 이제 소중히 담아 두고, 몽골생활 2부인 겨울사업에 또 집중해서 마지막 에세이 때 겨울사업 회고록 에피소드들로 쏟아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