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몽골] 여행을 떠나보으리 – 돈드고비 이호준 단원
이호준 단원?
바야흐로 여행의 계절이다. 몽골은 개인적으로 6월말에서 8월초가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라 생각이 든다. 지난 6월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총 5일의 휴가 중 2일을 써버려서 몽골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휴가지인 홉스골 그리고 고비는 못갈 것 같아 짧게 기차여행을 가기로 계획을 하였다.
기차여행의 후보지로 4 곳이 있었는데, 다르항, 에르데네트, 사잉샨드, 셀렝게가 그것이다. 다르항, 에르데네트는 몽골의 제 2,3의 도시이고, 사잉샨드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장소이며, 셀렝게는 러시아 국경과 접한 도시이다. 그럼 어디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의 생각을 거듭한 끝에 셀렝게를 가기로 하였다.
??
토요일 아침, 기차역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군악대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방송 취재진들도 와서 카메라를 이리저리 들이대고 있었다. 괜스레 기차여행이 재밌어 질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4인 쿠페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구경을 했고, 기차는 10분 정도 있다가 출발을 하였다. 도시를 벗어나 칙칙폭폭 달리는 기차 바깥 풍경을 보니 내가 살고 있는 고비지역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타는 듯한 더위 속에 굳건히 푸름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 무엇인가 따뜻하고 여유로운 초록빛 세상이 내 앞에 펼쳐졌다. 이렇게 몇 시간을 감상에 젖다보니 슬슬 배가고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차역 근처 바르쓰 시장에서 사온 라면을 꺼내어 뜨거운 물을 받으려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아.. 열리지를 않는다. 이리저리 해보아도 이 녀석은 대체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결국 노크를 했고, 승무원이 와서 문을 열어 주었다. 화장실 문은 기차가 달릴 때 열린다. 큰 도시에서는 기차가 달려도 문이 열리질 않는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예전에 기차로 몽골에서 중국으로 갔을 때 중간에 기차 바퀴를 교환한다고 2시간 30분정도 대기하고 있었는데, 배가 너무 아픈데 문은 열리지 않아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말하자면, 내가 몰랐을 수 있는데, 기차에서 화장지를 팔지 않았다. 긴 시간 달려야하는 기차에서 화장지를 팔지 않는다니 거의 패닉수준이었다. 나는 달랑 250원 짜리 휴지 그것도 반 정도는 써버린 것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다행히도 다르항에서 약 15분간 정차를 했었다. 그래서 부리나케 달려가 휴지를 사왔다. 이 곳 말고도 준-하라 라는 곳에서도 약 10분간 정차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달리고 달려서 셀렝게에 오후 8시쯤 도착했다. 어둑어둑 해져서 근처 광장에 들어가 뛰노는 아이들을 구경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관광지를 돌아보기 위해 택시기사와 이야기를 했고, 다 돌아보는 데에 현지 돈으로 3만 5천원을 내고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러시아 국경을 갔는데, 사실 그렇게 큰 감흥은 없었지만, 국경 너머로 보이는 중학교 때 배웠겠지만 잊어버린 서양 건축 양식이 보이자 아.. 저곳이 러시아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몽골과 러시아를 넘나들며 장사하시는 분들에게 이야기하면 러시아에 잠깐 들어갔다 올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여권이 없었고, 또한 봉사단원으로서의 규정을 지켜야하기에 눈으로만 보고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열린의사회라는 한국의 단체가 형광색의 조끼를 입고 걷는 모습을 보았다. 말을 걸어볼까 했지만, 택시 안에서 소심하게 안녕하세요! 하고 외치며 바라보기만 했다. 그 사람들은 날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다음으로는 어머니의 나무를 보러 갔다. 어머니의 나무라고 불리는 큰 나무를 보러가는 것이었다. 이곳을 관광지라고는 부를 수 없는 것이, 몽골 사람들이 어머니 나무 앞에서 엎드려 기도를 하고 있고, 또한 무당들도 와서 북을 열심히 치며 굿을 하고 있었다. 신성한 종교의식의 장이었다. 이 모든 광경이 내 마음에 마냥 편하진 않았다.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30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고 택시기사를 재촉하였다. 다음 장소는 새하니 후털이라는 곳이었는데, 멀리 강줄기가 굽이굽이 보이는 것이 일품이었다. 그곳에서도 멀리서나마 러시아를 볼 수 있었는데, 러시아라고 하니까 그렇구나 생각했지 이곳과 차이점은 잘 모르겠고,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던 장소였다.
여행이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나는 셀렝게의 시장을 방문했다. 이곳은 원래 가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러시아 슈퍼마켓이 있다고 해서 가보았다. 슈퍼마켓에서는 각종 러시아 물품들을 팔고 있었다. 러시아라고 쓰인 티셔츠라든지 러시아 인형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있었고, 그 밖에 물품은 몽골 슈퍼마켓과 동일했다. 그리고 셀렝게에서 잊지 못할, 지금도 계속 생각나는 셀렝게 빵을 이곳 시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정말 크고 아름답고 가격이 싸기까지 했다. 식감은 우리나라의 술빵과 비슷했고, 빵이 구멍이 송송 난 것이 마치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을 연유와 함께 먹는 순간 정말 맛있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우리 동네에서 먹었던 빵이 그냥 커피라면 이 셀렝게 빵은 바리스타의 손길이 느껴지는 그러한 커피라고나 할까. 어떤 것을 커피에 비유할 때 나오는 그 커피제품은 말을 못하겠다. 간접광고 이니까.
시장을 돌아보고 나니 슬슬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자이승 전망대와 같은 계단이 많이 있는 높은 곳에 올라가게 되었다. 올라가니 셀렝게 도시의 전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올라갈 때 힘들어서 노래를 부르며 갔는데 역시 힘들 때는 노래가 최고다. 노동요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숙소로 돌아와서 마지막 밤을 맞이하였는데, 먼 곳에서 온 이방인을 쉽사리 보내주기 싫었는지,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 아까 어머니 나무를 보고 온 것이 계속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그것 때문이었을까. 잠을 한숨도 못 잤다. 눈이 토끼처럼 빨간 상태로 나는 아침에 서둘러 기차를 탔다. 이윽고 곧 잠이 들었다. 몇 시간 지났을까. 화장실을 가려고 깼는데, 이 놈의 문이 또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승무원을 불렀고, 문을 닫고 나서 한 번 열어보라고 말을 했는데 승무원도 문을 못 여는 것이 아닌가. 어색한 승무원과 나는 서로 문을 두들기며 “열어주세요!” 를 외치기 시작했고, 곧 어떤 남자가 큰 웃음소리와 함께 문을 열어 주었다. 화장실을 갔다 오고 나서 나는 다시 또 긴 잠을 청했고, 눈을 뜨니 울란바토르에 도착해 있었다.
셀렝게를 갔다 오고 나서 느낀 점은, 빵이 진짜 맛있다. 러시아와 가깝구나. 이 두 가지 정도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빵을 먹으러 셀렝게에 다시 한 번 더 가보고 싶다. 어느 라면 광고의 카피가 떠오른다. 맛의 덫! 맛의 올가미! 맛의 감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