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몽골] 6월 에세이 – 이종미 단원
몽골에 온 지 얼마나 됐나 생각해보니 이제 3달이 지났나 보다.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으면서도 매일매일이 실하게 채워져 있다. 지금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울란바타르 지부에서 사전 교육받은 1달도 뭔지 모르게 하는 일 없이 바빴지만, 에르덴으로 오고 나서는 정말 매 순간이 새로운 경험으로 꽉 차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삽도 잡아보고 땅도 파보고, 양 손에 물 꽉 채운 양동이 들고 낑낑대면서 조림장을 누비기까지. 덕분에 눈에 띄게 떡 벌어진 어깨를 갖게 됐다. 겨울이면 근육이 빠지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과연 그럴지는 의문이다. 생전 처음으로 타지에서 1년이라는 장기간을 부모님 없이 생활하는지라 부모님께서 많이 걱정하시는 눈치지만,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다. 처음에는 알뜰살뜰 잘 생활해서 한국 돌아갈 때 용돈할거 조금이라도 모아갈 생각이었지만, 생활하다 보니 나한테는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 같다. 그냥 속 편하게 여기 있을 때 잘 먹고 잘 지내다가 돌아가려고 한다.
지금까지를 돌이켜보자면 얻은 것도 많고, 잃은 것도 많은 것 같다. 사실 잃은 거라고 해봤자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놓친 것이나 한국에서의 편안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 정도랄까? 브루노 마스의 내한공연을 가지 못한 것이 뼈저리게 슬프고, 마룬5의 내한공연도 갈 수 없다는 점 역시 생각할수록 눈물이 눈 앞을 가리고, 집 근처 맥도날드가 다시 오픈했다고 하던데 맥도날드 마리오 대란을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 슬프다. 한국에 있었으면 가고 싶은 공연 다 가고, 먹고 싶은 음식 다 먹고 했을 텐데. 하기사 난 이제 졸업한 학생 아닌 일반인이라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겠다 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이 몽골 땅에 와서 지금, 여기가 아니면 평생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은 보고 느끼고 있다. 엄청나게 넓은 초원과 아침에 눈 뜨면 집 앞을 지나가는 염소 떼, 양 떼, 유목민들. 밤이면 정말 말 그대로 쏟아질 듯한 별들까지. 조림장에서 하고 있는 일들도 힘들지만 생각보다 할 만하다. 하루에도 조림장을 몇 번씩 가로지르고, 전지가위로 벌레들을 잡고 있다 보면, 정원사라는 직업은 어떤 걸까 진지하게 궁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서든, 무엇보다도 사람 관계가 제일 중요하듯. 다행히도 주민팀장님들과 주민직원분들께서 친절히 해주셔서 별다른 탈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현지 주민분들께서는 한국에서 온 단원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시긴 하지만, 솔직히 내가 얼마나 그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작년 단원분들이 몽골어도 잘 하셨어서 그런지, 아직까지 작년 단원들의 자리가 큰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올 해 작년 단원보다는 아닐지라도 그만큼 잘 하고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올 해 푸른아시아 사업 목표가 주민 자치 기반 조성을 위한 해라고 한다. 사실 가만히 보면, 주민직원분들은 여기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생활하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 유목생활을 하던 민족이라 그런지, 오고 감에 미련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르덴 하늘마을에 남아서 나무를 심고 관리하시는 그 분들을 보면, 각자가 어떤 이유에서라도 지금 하고 계시는 일에 만족하고 계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주민직원분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푸른아시아 내에서의 일을 생각하고 계시는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분들께서 여기 에르덴 조림장에 있는 나무들을 잘 관리하고 계속해서 키워나가 주셨으면 좋겠다. 유목 생활을 하셨던 그 분들에게 많은 걸 바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지금 이 순간에는 짧은 기간이지만 올 한 해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이용해서 최대한 돕고 싶다. 한국에서 온 나의 눈에서 보는 필요가 아니라, 그 분들의 입장에서, 그 분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일을 하고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까지는 많이 부족했을지라도,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꼭 이 다짐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아, 그리고 몽골어 공부 좀 해야겠다. 꼬마 아이들이 준 편지도 해석하기가 이렇게 어려우니… 이건 내 몽골어 실력이 형편없어서가 아니라 필기체에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혼자서 위안 삼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