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몽골] 푸른아시아, 첫 발을 내딛으며 – 이호준 단원

3월 한 달이 지나고 봄을 알리는 4월이 왔다. 올해 3월은 이상하게도 많이 따뜻했다. 나는 몽골에서 2번째 봄을 맞이했다. 4년 전이 그랬고, 또 지금이 그렇다. 그때는 3월에 눈이 많이 내렸고, 패딩점퍼로 몸을 감싸고 다녔었다. 그런데 올해는 바람막이만 입어도 괜찮을 만큼 따뜻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추울 때는 추워야 되는데 괜히 걱정만 앞섰다.
몽골은 정말 많이 변화해왔다.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고, 이제는 스마트 폰을 많이 사용하고, 교통비도 많이 올랐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 일대일에 가까웠던 환율은 이제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원화와 달러 강세로 몽골 사람들이 살기 팍팍해졌다. 물가도 굉장히 많이 올랐고, 또한 화려한 도시 뒤 편에는 수많은 게르촌이 점점 확장되고 있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몽골은 원래가 유목민족이다. 같이 함께 할 가축들이 없다면 살 수가 없다. 그래서 가축이 없어진 이들은 우리나라의 과거처럼 도시로 몰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 역시 일자리가 풍부하지 않아 그들을 다 수용할 수 없고, 결국에는 환경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게르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왜 여기에 다시 왔을까. 몽골에 다시 가고 싶다 라는 마음부터 출발 한 것 같다. 그리고 조금 오래 있고 싶어졌다. 그래서 푸른아시아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고, 작년 말에 합격을 했다. 사실 내가 내세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 심는 일을 주로 한다고 하니 힘있고 삽질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체력을 가지고 있으면 뽑아주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사업계획서라는 것을 적어보고, 또 서울 본부와 몽골 지부에서 교육받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단순히 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것을 넘어 사람을 키우는 곳이었다. 자연재해로 인해 재산을 잃어 난민이 되어버린 분들에게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주는 곳이었다.

나는 일년간 지역주민들과 지지고 볶고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내가 배웠고 최고이자 최선이라는 한국어와 영어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바디랭귀지와 짧은 몽골어로 그들과 환경을 위해 또한 삶을 위해 걷고 또 걸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주민들과 농담따먹기도 하고 다툴 일도 웃어넘기는 여유로움이 생길 거라 기대한다. 무엇보다 나와 그 분들의 신뢰가 서로서로의 마음 속에 자리잡길 바란다.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이 1년의 시간 속에 나와 주민들은 사람을 심고, 키워내고, 자연을 친구 삼아 자연과 선물을 주고 받으며 재미있게 살아갈 것이다.

몽골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왜 이리 높고 푸른지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설레는 가슴 가득 안고 숙소 밖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