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차 유엔기후변화 총회가 남긴 숙제
오기출(푸른아시아 사무총장)
우리는 기후변화가 일어나서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최근에는 역대 태풍 중 최고였던 슈퍼태풍 하이옌이 초속 105미터로 필리핀을 초토화했음을 알고 있다. 그것이 기후변화의 결과라는 사실까지 말이다. 아울러 이미 2007년도에 한국의 기후학자들도 한반도에 이런 강력한 슈퍼태풍이 올 것이라 예고했다. 그 시나리오를 보면 결국 한반도에 예상되는 슈퍼태풍이 기후변화의 결과이고 그 예상 피해는 상상을 뛰어 넘는다. 내버려 두면 결국 기후변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도 심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할 이유이다.
그렇지만 지구촌의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194개 나라가 참여하는 유엔기후변화당사국 총회가 매년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1992년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만들어진 이후 19차례나 열렸다. 심지어 이 총회의 결정이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따라 기후변화를 획기적으로 막을 수 도 있고,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지구생명과 인류문명이 파괴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시민들이 관심 갖는 것은 무척 어렵다.
왜 그럴까? 왜 인류의 생존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결정을 하고, 194개 나라의 대표들과 유엔 사무총장, 각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이렇게 중요한 기후변화총회가 대다수 시민들의 관심 밖에 있을까? 왜 언론은 그저 단신 처리를 하거나 심층 보도를 해도 알아들을 수 없거나 맥락도 이해되지 않는 복잡한 이야기로 일관할까? 왜 나의 문제이고, 우리의 문제이고 우리 후손들의 문제인데 그들만의 리그로 항상 일관할까?
지난 2010년 11월 멕시코 칸쿤에서 유엔 기후변화 총회 때였다. 194개의 나라 대표, 유엔 사무총장, 각국 정상, NGO 활동가 등 약 3만 명이 멕시코에 입국했다. 당시 한 언론인이 유엔 총회가 열리는 칸쿤 인근 지역과 멕시코 주요 도시들의 시민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지금 여러분의 나라, 칸쿤에서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가 열리고 있는데 아시나요?”
그랬더니 질문을 받는 80% 이상의 시민들이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런 총회가 멕시코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대다수 시민들이 모르고 있었다. 이것이 당시 기후변화 총회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멕시코 칸쿤 이후 벌써 3년이 흘렀다. 지금의 반응은 어떨까?
지난 달 11월 11일부터 11월 23일 2주간 194개국 대표들과 세계 각국에서 온 2만 여명의 사람들이 폴란드 바르샤바에 모여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UNFCCC)를 진행했다. 그런데 여기 바르샤바에서 개최한 기후변화 총회에 대해 들어본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폴란드 국민들은 어땠을까?
그런데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면 어떨까? 폴란드 바르샤바 기후변화 총회가 시작되는 시점에 슈퍼태풍 하이옌이 불면서 필리핀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이 총회에 참여한 필리핀 대표가 자신이 하이옌의 직격탄을 맞은 지역 출신이고 자신의 형제와 친척들이 이 지역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눈물로 기후변화에 대한 의미 있는 결정을 할 때까지 단식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사실이 전 세계의 언론을 타면서 지구촌의 사람들을 공감시켰다. 이 뉴스 에 등장한 그 회의장이 바로 이번 1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가 열린 바르샤바였다.
나는 11월 23일 필리핀 대표가 기자들에게 “배고파 죽겠어요 (I am famished), 배고파 죽겠어요 (I am famished)” 라고 호소하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다.
그런데 필리핀 대표의 용기 있는 행동에 관심을 가진 것과 별개로 정작 기후변화총회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아마 관심을 갖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친구들과 하이옌과 필리핀 대표 이야기를 하면서 기후변화총회에 대해 언급하는 친구들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이번 19차 기후변화 총회의 영웅은 필리핀 대표로 보고 싶다. 그의 이러한 발언과 행동으로 그는 선진국에서 참여한 대표들이 기후변화 총회 처음부터 결정을 거부했던 ‘손실과 피해’ (Loss and Damage) 메카니즘의 결정을 이끌어 내었다. 개도국의 기후변화 피해에 지원을 하는 ‘손실과 피해’ 메카니즘의 결정을 이끌어 낸 것은 이번 19차 기후변화 총회의 주요 성과 중 하나였다. 물론 선진국들이 지원할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결정이 없었지만 말이다.
이번 기후변화 총회를 연 개최국인 폴란드의 역할을 보면 정말 형편이 없었다. 총회가 한참 진행되던 11월 20일 개최국의 폴란드 도널드 터스크 (Donad Tusk) 총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총회 의장이었던 폴란드 환경부 장관의 직위를 박탈했다. 심지어 기후변화 총회가 있는 시기에 맞추어 세계석탄정상회의를 바르샤바에서 개최했다. 기후변화를 만드는 온실가스의 대표 격인 ‘석탄’ 관련 정상회의를 폴란드 정부가 만들고 기후변화 총회 의장의 장관직을 박탈하는 것은 기후변화 총회를 무시하는 처사였다.
이러한 개최국의 처사들은 기후변화 총회에 대한 기대를 더욱 암울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이번 총회에 참여한 나라들 중 한국을 포함한 다수의 정부 대표들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서 2015년 상반기까지 숙제를 유엔기후변화총회에 제출해야 한다. 핵심은 2020년부터 새롭게 진행할 의정서(교토의정서를 대체할)에 담을 온실가스 감축 목표이다. 그래야 2020년 체제를 결정하기로 정해놓은 기한인 2015년, 제 21차 프랑스 파리 기후변화 총회에서 2020년 기후변화 체제의 윤곽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렇게 기후변화 총회가 지구촌 시민들의 관심밖에 있는 이상 2015년까지 획기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합의할 수 있을까?
나는 2015년 합의가 현재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주체들이 각국 정부의 외교관들과 공무원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분들은 기후변화 현장의 생생한 상황과 목소리를 담는 것보다 자국의 상황, 정치 일정, 외교적인 주도권과 이해관계에 더 관심이 많다. 따지고 보면 2015년 상반기까지의 온실가스 저감목표 제출을 미국이 주도했는데 그 배경에는 미국의 선거 일정과 깊은 관계가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결정은 기후변화 현장에 대한 구체적인 목소리를 반영할 때 지구촌 사람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다고 본다.
기후변화 총회가 개최되고 있는 사실을 기후변화 피해 현장인 홍수 빈발지역, 사막화 지역, 5천만 명이 넘어선 환경난민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기후변화로 인한 취약 지역에 살고 있는 21억 명의 생생한 상황과 목소리를 유엔 고위급과 각 나라의 외교관들은 알지 못한다.
나는 세계은행 김용 총재가 지난 7월 런던에서 고백한 다음과 같은 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 십 몇 년간 전문가들이 기후변화 현장과 주민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말 보잘 것이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기후변화 피해지역의 주민들과 관련한 풀뿌리 현장이다. 그런데 그 풀뿌리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극히 드물다”
결국 숙제는 기후변화 풀뿌리 현장, 피해 주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야 지구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유엔에서 돈과 주도권, 이해관계로 싸울 것이 아니라 하이옌 태풍 피해를 눈물로 호소한 필리핀 대표처럼 기후변화 총회에 참여한 대표들이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향후 유엔 기후변화협약 총회가 풀어야할 숙제이다. 미래 지구 생명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