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6-[Main Story] 나눔의 기쁨을 맛보는 것은 희생을 값으로 산 선물

2013년의 마지막날을 한달정도 남겨둔 지금? '나눔의 기쁨과 공동체 사회'를 커버 스토리로 기획하여?한해를 정리하고 자신과 타인의 삶을 뒤돌아보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적책임과 함께하는 기쁨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개인이 아닌 한 사회에 속한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의 역할과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푸른아시아 홍보교육국장 김종우

이철환 님의 作 [연탄길]에는 “소중한 희망”이라는 짧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화가인 병희는 삼층에 이사 온 한 충격적인 모습의 아기와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슬프게도 아기는 오른쪽 눈이 흉한 모습으로 감겨 있었다. 더구나 기가 막힌 것은 그 아이의 어머니도 눈을 잃어버린 듯 한쪽 눈을 질끈 감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며칠 후 아이의 엄마가 병희를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기 얼굴을 그릴 수 있나 해서요. 얼마 전 돌 때 찍은 사진이거든요. 이걸 좀 그려 주셨으면 해서..” 그가 받아든 사진 속에서도 아기의 눈은 슬픈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진이 크고 선명해서 그리고 어렵진 않겠어요.” “실은 한 가지 더 부탁드릴 게 있거든요. 어려우시겠지만 제 아기의 오른쪽 눈을 아프지 않게 그려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그릴 수 있지요.”
병희는 며칠 동안 힘겹게 아기의 그림을 그렸다. 다른 부분은 만족스럽게 그리고 나서도 오른쪽 눈동자에 점 하나 찍는 일 때문에 세 번을 다시 그려야 했다. 문득 자신이 그린 작은 눈동자 하나가 엄마와 아기의 소중한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 후 어머니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기가 더 크면 아기에게 내 눈을 이식해줄 거예요. 그러면 저 그림처럼 내 아기도 예쁜 눈을 가질 수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한 쪽 눈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한 쪽 눈으로 밥을 먹고, 계단을 내려오고, 또 길을 걸으면서……. 그래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병희는 그제야 3층집 여자가 눈을 꼭 감고 계단을 내려왔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눈다는 말은 함께 하다는 의미다. 양量의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하나를 나누면 반半이 되지만, 질質의 차원에서 보면 나누어 진 각각의 반은 또 다른 하나의 개체로 새롭게 탄생하여 필요한 일에 쓰임으로써 오히려 양量이 배로 늘어나게 된다.
때문에 나눈다는 행위는 단순히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베푸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주는 사람과 나눔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여 공유하는 행위다. 나눈다는 것은 사회공동체가 가장 잘 운영될 수 있게 하는 제일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나누기를 꺼려한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면 그만큼 내 몫이 줄어들고, 줄어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수고를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중한 희망’ 이야기는 우리에게 말한다. 나눔이라는 숭고한 행위는 자신의 몫을 기꺼이 반으로 덜어내는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쓰고 남은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야 될 몫을 정해 덜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행위에 희망이라는 기쁨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내가 이웃과 나눔으로써, 내가 이웃을 배려하고 협동함으로써 창조된 가치들이 공동체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그 풍요로운 공동체는 다시 그 구성원들에게 보다 발전된 삶의 질을 보장하는 공동체의 원리가 만들어 질 수 있다.

최근 발표된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 41%로 잡았던 원전 비중을 대폭 축소시켜 22~29%로 낮추겠다고 말하고 있다. 언론은 뉴스를 논평하며 인류의 미래를 위해 크게 진일보된 것이라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2030년까지 에너지 소비 증가율과 함께 비교해 보면 지금 있는 원전보다 15기 정도의 증가가 필요하다고 계획하고 있고 2022년 까지 9기 추가건설계획의 변동이 없다는 것이다. 독일이 원전제로 정책을 발표하며 독일 시민이 에너지 소비량을 75%수준으로 줄이지 않으면 이 정책은 이룰 수 없다며 국민들에게 홍보하던 내용과 사뭇 대조적이다. 자신의 편리를 덜어내는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를 보장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시대에 나눔의 아我와 타他의 확장은 우리 시대를 넘어 세대의 나눔이다. 즉 우리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나눔이다. 인디언 속담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분명 이 땅과 하늘의 주인은 우리의 아이들이고, 우리는 그들의 미래를 빌려 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는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인간의 편리를 추구하는 개발중심의 논리에서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또 한쪽에서는 ‘한 사람이 열 그루의 나무를 심으면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다“라고 외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기후변화의 시대에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던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선택의 핵심은 ‘나눔’이다. 지금 내거라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 중의 일부를 당연하게 이웃의 몫으로 덜어내고 살아갈 것인가이다. 그리고 “한 쪽 눈으로 밥을 먹고”, “한쪽 눈으로 계단을 내려오고”, “한쪽 눈으로 길을 걷는 삶”을 선택한다면 당신은 소중한 희망, 기쁨을 선물로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