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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들을 도울 것인가?

오기출(푸른아시아 사무총장)

2008년 5월 2일 새벽, 미얀마 남부 인도양 해변으로 밀려들어온 태풍 ‘나르기스’로 인해 바닷물의 수위가 5미터 이상 올라갔다. 이로 인해 인도양과 접한 에이어워디 삼각주와 인근 섬에 살던 13만 6천명의 주민들이 사망했다. 인도 기상 당국이 보낸 나르기스의 위험성에 대해 4월 30일 전달을 받은 미얀마 기상청 툰루윈(Tun Lwin) 박사. 그는 정부 당국에게 주민들을 긴급하게 대피시켜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묵살되었다. 희생자들의 다수는 힘이 없는 어린이들과 부녀자들이었다.
즉각 언론을 통해 국제사회로 전해진 이 참상에 유엔과 각국 정부와 구호 단체, 기업과 시민들은 엄청난 규모의 구호물자와 지원비를 보냈다.

2004년 12월 26일, 인도양 해변으로 몰려온 쓰나미로 인도네시아 아체 주 등에서 22만 5천 여 명이 사망하자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규모로 구호활동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구호 요원들이 과도하게 들어오는 구호품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지만, 그래도 구호물자의 쇄도는 계속 되었다. 이로 인해 구호 현장에 들어오는 수많은 단체들이 서로 공간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물론 ‘우리는 한마음 한 뜻’이라는 동지애가 작동을 한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순식간에 인도네시아 정부가 요청한 금액을 훨씬 넘는 70억 달러의 지원비를 국제사회가 약속했다.

2003년 수단 남부 흑인 마을인 다르푸르에 무장한 수단 북부 아랍계 출신의 ‘잔자위드’ 민병대들이 들이닥쳤다. 당시 22만 명의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되고, 220만 명의 주민들이 광포한 민병대를 피해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되었다. 즉각 인도적 구호단체들과 구호요원들이 현장에 파견되었다. 서구 사회는 아프가니스탄 유혈사태와 비슷한 잔인한 ‘인종청소’로 다르푸르 분쟁을 규정했다. 구호단체들은 현장의 참상에 대한 소식을 전했고 언론은 미국과 유럽 정부에 정치적 군사적인 개입을 요청하게 된다.

나는 2013년 3월 미얀마 남부 ‘나르기스’ 피해지역을 방문했다. 나르기스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는 여전히 대규모 태풍이 매년 발생하지만 태풍 대피소는 100만 명이 사는 지역에 고작 두 개 있었다. 아울러 피해지역을 재건하는데 10년 이상 걸림에도 불구하고 재건을 위한 국제 구호 기구 혹은 단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유엔개발기구(UNDP) 미얀마 지부가 12억 원의 예산을 갖고 여성들에게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있을 뿐이다. 현장에는 나르기스 당시 국제적인 지원을 받아 활동한 몇 개의 미얀마 국내 시민단체들이 쓸쓸히 남아 있었다.

아울러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 아체 주 등의 지역도 10년이 지났지만 재건을 위한 활동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울러 수단 남부 다르푸르의 분쟁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다르푸르에는 여전히 무력투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구호요원들도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왜 이럴까? 왜 참상이 일어난 지역에 구호물자, 돈, 구호단체, 구호요원들이 집중적으로 들어갔다가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까? 명백한 한 가지 사실은 언론 관심의 유무이다. 언론은 새로운 참상지역이 나타나면 그 곳으로 옮겨간다. 언론의 관심을 따라 구호물자와 구호기구들이 옮겨간다. 2003년 관심을 끌던 다르푸르는 갑자기 관심에서 사라졌다. 그러다 최근 언론의 재조명을 받고 있는데 하나의 이유는 분쟁 중인 북부와 남부가 정치적 합의를 하고 남부가 독립을 한 것이고,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이 지역에 상당량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몽골에 2010년 2월에 기후변화가 원인인 재앙(몽골어로 주드)이 발생하여 750만 마리의 가축이 굶어 죽었다. 30센티미터 이상의 눈보라와 영하 50도의 기온이 20일 이상 유지되어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20일 만에 2만 명 이상의 환경난민이 발생했다. 이들은 모든 재산을 잃고 빈곤의 덫에 갇혀버렸다. 유엔은 이들에 대한 구호를 요청했지만 언론은 보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국제 구호기관은 오지 않았고, 구호물자도 몽골에 오지 않았다.

‘인도적 구호 응답은 복권 추첨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구호 기관들은 털어 놓는다. 이렇게 말이다. “위기 상황에 시달리는 전 세계 50여개 지역은 매일 복권 당첨을 고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첨되는 곳은 1년에 고작 한두 지역에 불과하다. 그것도 운이 따라야 한다.”

문제는 운이 좋아 당첨된다고 해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언론의 관심은 언제나 새로운 곳으로 옮기니 말이다.

나는 이런 인도적 구호의 현실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방향과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점을 구호단체들에게 제안했다.
그 동안 관찰을 해보면 피해지역에 사는 힘이 있는 남성들과 젊은 층은 도시로 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대다수 부녀자들과 아동들이 피해 지역에 남는다. 결국 여성들과 아동들이 최대의 피해자가 된다. 이들이 파괴된 지역을 지킨다는 점이 너무나 안타깝다.

누가 피해를 입은 지역에 남아 있는 이들을 도울 것인가? 에 대해 이제는 진지하게 논의하고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앞으로 기후변화는 더 심해질 것이고 피해지역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한국과 국제사회의 인도적 구호 단체들과 기구, 정부 부처, 언론이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이다.

결국 많은 구호물품과 물량공세가 답이 아닐 수 있다. 이러한 구호는 현지의 피해 주민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피해 지역의 주민이 해결의 주체이고 주인임을 생각한다면 답도 나온다고 본다. 이들의 자립을 목표로 빈곤을 저감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이 프로그램을 갖고 활동할 마을 현장 지도자들, 마을 공동체 그리고 현지의 NGO들의 네트워크가 매우 중요하다.

언론과 구호 기구들이 현장의 처참한 상황을 보여주면서 시민들에게 죄의식을 유도하는 방법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주민들이 희망을 찾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이 이렇게 처참하게 지내니 모기장과 담요를 10만장 보내자는 호소는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그 나라의 모기장과 담요를 만드는 기업을 무너뜨리는 효과를 잊지 말아야 한다. 간혹 선의가 지옥으로 가는 길을 만들 때가 있다.
나는 향후 인도적 지원은 피해 주민들의 권리에 기반을 두고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즉 지원을 하는 측이 주인이 아니라 지원을 받는 측이 주인이고 이들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면서 빈곤을 저감하고 마을을 복구하는 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따라서 긴급구호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 구호가 더욱 필요하다. 푸른아시아는 몽골과 미얀마의 기후변화 사막화 현장에서 지속적인 마을 만들기 활동을 하고 있고 이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한다. 푸른아시아는 이러한 지속적인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사례와 기준, 전략개발과 프로그램을 분야별로 만들어 가고자 한다. 이를 확산하는 것도 우리의 의무이다.

누가 이들을 도울 것인가? 결국 이를 위해 피해 지역과 피해 주민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한 인도적 지원의 혁신에 힘을 모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