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날씬한데, 내가 살찌는 가을 – 바가노르 사업장 김현진 단원

 

 

바가노르 사업장?김현진 단원

이제는 에세이 쓰는 것이 무섭다. 시간이 빨리 가기를 바랐던 5,6월과는 달리 7월, 나는 시간이 멈추길 기도 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고 현실을 즐기면서 활력소를 얻었고 이 에너지로 업무도 재밌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날씨가 숨이 막힐 듯 덥더니, 어느 새 8월 말이 되어 전기장판을 다시 꺼내들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조림장의 나무들은 눈에 띄게 노랗게 변했다. 8월 초부터 노랗게 조기낙엽이 지기 시작하더니 정신 사나운 내 상태를 안정시켜주었던 우리 나무들은 없고 다들 시들시들해져 가고 있었다. 매일 출근을 하는데도 그 때마다 나무들이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동시에 이제 조림 사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면서 씁쓸하기도 했다. 내가 별로 한 게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내가 없어도 알아서 폈다 졌다, 일어났다 잠들었다는 자연스럽게 반복하는 자연의 땅 몽골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애초에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고 이런 이유로 항상 보리음료를 옆에 두고 살기도 했다(?).음.

몽골에 가을이 찾아왔는데도 딱히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이러한 이유일수도 있다. 알아서 계절에 맞게 자신을 변화시키는 자연들이 내 주변에 항상 보이기 때문에, 내가 조증과 울증을 왔다 갔다 할 때마다 그 애들(?) 덕분에 적절히 치유가 되곤 한다. 어쩔 때는 하늘색이었다가 가끔은 파랑색, 마치 제우스가 살 것 같은 구름이 떠 있는 하늘과 가끔 묘지가 보여서 섬뜩할 때도 있지만 노란색이었다가 녹색이었다가 밤에는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시커멓게 변하는 초원들도, 내가 보고 싶으면 언제나 내 주변에 존재하기에 딱히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끔은 이렇게 편안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어 두려워지기도 한다.

‘몽뚱이(몽골 뚱뚱이) 미션을 벌써 클리어 해도 되는 것일까?’

여기서는 정말이지 내가 제일 무섭다.

거울을 볼 때면 ‘눈도 두 개, 귀도 두 개, 콧구멍도 두갠데, 굳이 턱까지 두 개일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토플, 몽골어, 중국어, 대학원 준비 등등 내가 완수해야 할 임무가 참 많았던 것 같은데 왜, 왜 하필 몽뚱이 미션을 벌써 성공시킨걸까.

한 끼 쯤 안 먹어도 안 죽던데, 왜 나는 ‘하루에 세 끼’라는 일반적인 상식의 틀을 깨고 다섯 끼씩 먹고도 아쉬워하고 있는 걸까? 초원을 뛰어 다니는 말들은 굉장히 몸이 늘씬한데, 내가 저 가축들보다 못한 존재는 아닐까? 이런 몸으로, 한국엔…. 돌아갈 수 있을까?

아, 생각의 땅이다. 고민의 땅이다.

아니다, 살이 찌는 땅이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나는 아마 ‘잘 보일 사람이 없어서’ 라는 핑계를 대며 돈과 시간을 들여 살을 찌우고 있겠지.

내일은, 다음 달은, 조금 덜 먹는 나를 기대해 본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