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꽃밭에서 살고 있다 – 에르덴 사업장 백민주 단원

 

에르덴?사업장?백민주 단원

나는 머리를 감을 때마다 자라난 머리카락을 보며 시간이 흘렀음을 느낀다.

10개월 치 대용량 비타민을 먹을 때마다 남아있는 비타민을 보며 남은 시간을 어림잡는다.

다이어리를 쓸 때마다 두껍게 넘어가버린 지난 페이지들을 보며 벌써 반이나 지났음에 놀라곤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매달 에세이를 쓰겠다고 말해놓곤 1번밖에 쓰지 않았다. 이제야 에세이를 쓰는 데는 ‘바빴다‘라는 핑계를 대야겠다.

‘바빴다‘라는 핑계에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어감이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나의 ’바빴다‘에는 그 앞에 ’즐겁게‘가 생략되어 있다. 그 즐거움에는 조림장의 일과 더불어 7월 중순부터 시작한 한국어 교실, ‘주민 대화합잔치’ 등 주민들과 함께했던 시간, 툭하면 한 시간씩 걸어가 놀았던 톨강에서의 추억, 축제와 휴가, 그리고 모든 순간순간 들이 속하겠다.

정말 지난 5개월 동안의 시간은 가는 줄도 모르게 지나가 버렸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 10을 썼다면 나머지 90은 모두 경험이었다. 내가 한 거의 모든 일 앞에는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어설펐던 구덩이 작업을 시작으로 식재, 관수, 제일 귀찮았던 무수한 저수조 보수 그리고 보고서와 몇 번의 에코투어가 지나고나니 어느덧 8월 말. 그리고 이제야 내가 에르덴 조림장의 한 일원으로 잘 어우러져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삽질했을 때가 생각난다. 어설픈 삽질로 구덩이를 파고 난 뒤에는 꼭 주민 팀장님인 앙카 팀장님을 불러 다시 파야하는지 확인 받고 통과가 되면 다른 구덩이를 파곤 했었다. 그 때는 정말 구덩이 작업이 제일 힘들고 어려운 줄 알았는데 이제는 구덩이 작업이 제일 쉬운 작업임을 알게 되었고, 내가 에코투어를 온 학생들에게 구덩이 파는 시범을 보이며 구덩이 파는 것을 알려주고 통과 확인을 해주고 있다. 시간이라는 힘이 이렇다.

‘당신이 에르덴 조림장에서 지내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 라고 누군가 물으면 나는 이곳은 시간이 빨리 가서 좋다고 말하겠다. 시간이 빠르게 가서 좋다는 말은, 마음이 편하다는 말도 되겠다. 사실 아직도 나는 외국에 온 느낌이 들지 않고, 종종 한국에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 곳에서 지내다보면 한국에서 하던 괜한 생각을 잊게 된다. 한국에서 하던 잡생각, 잡걱정은 이제 나에게 티끌만큼의 존재감으로만 남았다. 잡생각이 사라지니 이 곳은 그 어느 곳보다 내 자신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된다. 물론 이 곳도 사람 사는 곳이니 사실 이런 저런 문제도 생기고 주민과의 트러블도 종종 발생한다. 때론 조림장 한가운데서 스트레스 가득 담아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도 하고, 격해진 내 자신에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내 자신을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점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실제로 조림장 한가운데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너무 넓어 나만의 비밀일 뿐이다.)

이제 남은 시간을 크게 나누자면, 바쁜 조림 사업의 대부분이 끝났고, 겨울의 주민 교육만 남았다. 겨울엔 다들 시간이 많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지금처럼 바쁘게 살고 싶다. 행복하게, 바쁘게

지난 5월 에세이에 가볍게 ’나는 정말 정말 정말 행복하다‘라는 문장으로 표현했다면 이번엔 ’꽃밭에서 살고 있다‘는 표현을 하고 싶다. 실제로 지금 에르덴 조림장은 예쁜 꽃들이 하루하루 다르게 만발해서 꽃밭이고, 그와 마찬가지로 나의 마음도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 미소 짓고 있는 꽃밭이다. 때론 그 곳에 황사도 불어오고, 비바람도 몰아치지만 어쨌든 나는 꽃밭에서 살고 있다. 그 어느 곳보다도 아름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