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제일 수상해 – 바가노르 사업장 김현진 단원

 

바가노르 사업장?김현진 단원

‘빨리 조림 시작하고 싶어’
‘빨리 주민 직원들이랑 일 하고 싶어’
‘조림장 언제 가요?’

4월의 어느 날. 아침부터 시작된 이별 행진. 바양노르 오빠들에게는 작별 인사도 하지 못했고 아침 여덞 시 부터 시작되는 이삿짐 나르기에 정신없었던 우리는 에르덴 아가들과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바가노르에 모든 업무가 끝나고 밥을 먹고, 오기 대리님이 우리를 떠나갔다. 난관에 봉착하면 5분 만에 달려 가 징징 대며 해결을 부탁할 수 있었던 울란바토르가 아닌 회색도시 바가노르에 우리를 남겨 놓고.

첫 인상은 정말 회색도시였다. 우리 빼고 다들 서로 친해 보이고 사는 게 편해 보이고 말도 서로 잘 통하는 것만 같았다.(물론 잘 통하겠지..)

허전함과 두려움에 눈물짓던 시간도 잠시, 번개 같은 속도로 집을 치웠다.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 신발을 신은 채로 걸어 다녔던 현장을 목격한 우리는 쓸고 닦고만 수십 번 반복했고 새벽 세 시까지 기나긴 청소가 이어졌다.

다크써클을 한 아름 안고 청소를 끝냈을 때 쯤 다시 밀려오는 공허함. 지부로 전화를 했다.

‘주말에 유비 갈래요.’

온갖 핑계를 대며 다시 유비로 달려갔던 우리는 힐링을 하며 짧은 유비 생활을 만끽했다.

바가노르에 돌아왔을 때 기다리는 건, ‘조림사업’

각 종 밸브에, 조림 자재들을 살펴보자며 조림지로 달려가길 두 차례. 태산 같은 걱정을 안고 갈 때는 몰랐지만 돌아올 때 느낀 우리의 옷차림.

긴 패딩에 등산화. 선글라스 또는 마스크.

우리는 또 동물원 원숭이처럼 주목당하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우리가 제일 수상했다. 이곳 바가노르는 부자들만 사는 동네인지 모두들 광채 나는 옷차림에 가방에….

우리가 지금까지도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제일 가난한 것 같아.’
그러나 가난해 보였던 우리는 한 끼에 밥을 두그릇씩 먹었다.
‘밥그릇이 작은거야.’
그 즈음해서 시작된 맥주의 향연. 반나절에 걸친 델구르(슈퍼) 탐방을 통해 맥주가 가장 저렴한 곳을 찾았고 코이카 단원과 현지인 친구가 놀랄 정도로 빠르게 우리는 맛있는 빵집, 과자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거 신발이 작아진 것 같은데?’
‘세탁기가 이상한가봐. 옷이 작아졌어.’
설마, 조림 사업을 시작하고 그 넓은 땅을 돌아다니면서도 저런 말이 나올 리는 없겠지만, 조금은 걱정되는 바가노르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