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0-[Climate Change Report]기후정의와 기후난민(1)

이 승 지(푸른아시아 정책팀장)

기후변화와 기후정의

기후변화는 지구적으로 그 원인을 제공하는 ‘원인자’와 그로 인한 피해를 받는 ‘피해자’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국제 환경문제로, 역사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에 먼저 기여한 제1세계 선진국이 기후변화의 ‘원인자’로 구분되며, 상대적으로 온실가스 배출 기여가 적거나 역사적으로 늦게 온실가스 배출에 동참한 제 3세계 개도국과 최빈국은 기후변화의 ‘피해자’로 구분된다. 그간 기후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 특히 인간 활동이 기후변화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였지만, 2007년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제4차 보고서에서 ‘인간의 과대한 에너지 소비와 산업 활동이 기후변화에 상당한 기여를 하는 것’으로 보고됨으로써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주장이 지구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패러다임이 되었다.

기후변화의 원인이 인간 활동에 기인한다는 주장을 전제했을 때,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서 ‘형평성’은 더욱 중요한 키워드가 되며, 원인자인 선진국의 책임과 개도국이 피해 문제는 더욱 분명하게 구분되어 드러난다.
기후변화로 인한 개도국(혹은 최빈국)의 피해 사례로 잘 알려진 케이스는 2001년에 국제사회에서 국토포기 선언을 한 남태평양의 작은 도서국가인 투발루 공화국이 있다. 투발루 공화국은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로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국토 유실이 심해지자 선진국에 대한 기후변화 문제의 책임을 주장하며 국토포기를 선언한 바 있다. 이들은 기후변화에 영양을 미칠 만큼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후변화의 피해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도 부족하다. 즉 투발루 공화국 국민들은 타인에 의해 그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긴 것이다. 이와 같은 기후변화 문제의 특성 때문에 ‘기후변화협약’에서도 ‘공통된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원칙을 기조로 하고 있으며, 이는 기후변화 문제 내부에 ‘불평등 혹은 불의’라는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실제로 Tol 등에(2004) 의하면 기후변화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좀 더 노출되어 있으며, 심각한 악영향으로 인해 더 큰 빈곤을 낳는 악순환을 되풀이 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 재난은 개도국 혹은 최빈국 시민들의 적응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더욱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실제로 UNDP의 보고(2007)에 따르면 2000년~2004년까지 발생한 전 세계 연평균 기후재난수와 수해로 인한 피해자 수는 총 2억 6,200백만 명으로, 이는 기준연도의 20년 전인 1980년~1984년 수준의 2배가 넘는 수치다. 또한 동일 보고서에 의하면 개도국 주민들은 19명 중 1명꼴로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 재난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 OECD 국가 주민들은 1,500명 중 1명 꼴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개도국과 최빈국은 선진국에 비해 기후변화에 기여한 바가 적거나 거의 업음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악영향을 받고 있고, 산업 혁명 이후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의 기여도가 높은 선진국은 기후변화의 피해를 적게 입어 심각한 불평등의 문제를 낳고 있다는 뜻이다(Kates, 2000).
이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악영향은 개도국과 최빈국에 더욱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으며, 이들 국가들은 농업, 어업, 임업, 목축업 등 기후변화 영향에 민감한 자연자원에 극도로 의존하고 있는 산업 구조를 갖고 있어 빈민으로의 전락 가능성이 높고, 나아가 국가 경제마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개도국과 최빈국은 기후변화 적응 능력이 부족해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기후변화의 큰 피해자가 될 전망이다(Rayner and Malon, 2001).

투발루의 사례와 같이 기후변화 문제에서 불평등 혹은 불의 문제가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선진국은 그 책임과 의무를 다 하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선진국과 개도국(최빈국)의 줄다리기는 매년 거듭되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2008년 폴란드 포츠난에서 열린 제 14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에서 기후정의네트워크 회원 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 배출의 역사적 책임은 북반구의 산업화된 국가들에 있다.(중략) 어떤 일이 있어도 북반구는 시급하게 저탄소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동시에 탄소 집약적 산업화 모델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남반구는 이런 전환을 위한 자원과 기술을 지원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바 있다.(기후정의: 기후변화와 환경파괴에 맞선 반자본주의의 대안, 2012, 이안앵거스 엮음, 이현우, 이정필, 이진우 옮김, 이매진. pp.252.)

그리고 2012년, 제 18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에서도 교토의정서에 의한 온실가스감축방안을 2020년으로 연기한다는 것과 선진국의 개도국에 대한 기후변화 장기기금 1,000억불 마련 방안을 2013년 제19차 당사국총회에 제출한다는 것 외에는 실효성 있는 내용이 결정되지 못했다.

기후난민

난민(Refugee)이란 넓은 의미에서 국적국에 대한 충성관계를 포기하여 법률상 또는 사실 국적국의 외교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을 말하지만, 당사자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성질에 따라 여러 종류로 분류된다(박병도, 2002). 그 중 환경난민은 자연재해나 전쟁에 의해 생존권을 박탈당해 국외로 탈출하는 실향민(displaced person)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난민(Environmental refugee)라는 용어는 엘-히나위(El-Hinnawi)가 작성한 1985년 UNEP 보고서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서원상․이준서, 2009 재인용). 환경난민 발생의 요인은 인위적 요인도 있지만 기후변화와 같은 자연적 요인에 인해 발생하기도 하는데, 고도로 발달한 산업구조와 공해산업으로 인한 환경오염, 기후변화, 화산폭발과 같은 대규모 자연재난이나 체르노빌원전사과 같은 인위적인 환경파괴 등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삶의 터전을 떠나지 않을 수 없거나 자신의 국적국에서 이탈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한편, 기후변화라는 국제적 환경문제가 국제적 논의에서 급격히 부상함에 따라 환경문제로 발생하는 환경난민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발생하는 기후난민이 혼용되어 쓰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환경적 원인이 반드시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기후난민을 환경난민의 하나의 유형으로 파악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UNHCR(유엔난민기구)의 보고서(2008)에서도 환경 난민과는 별도로, 지구온난화 및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한 난민을 기후난민(Climate Refugees)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난민으로서 보호되어야 할 사람에 관해서는 본래 국제법상 일반적 정의가 없으며, 수용국의 재량 혹은 입법의사에 위임된다. 또한 국제사회는 이러한 난민에게 최소한의 법적 보호라도 부여하기 위하여 소위 국제난민법을 발전시켜왔으며, 1951년에 제정된 난민협약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서원상․이준서, 2009).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제 3세계 국가에서 발생하는 기후난민의 경우, 기후변화문제에 내재되어 있는 불의적 특성 때문에 선진국의 문제 해결을 위한 책임과 노력이 더욱 많이 요구되어져 왔다.

한편, UNHCR 자료에 따르면 기후 난민과 같은 환경 난민은 2010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4,2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9년 1,700만 명에 비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수치다. UNHCR에서 정의하는 난민이란 ‘인종, 종교, 민족,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인 의견을 이유로 박해받는 사람들’을 뜻하는데 이들은 UN의 난민협약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다. 그러나 기후난민과 같은 환경재난이나 환경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난민은 특정한 ‘박해’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제사회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또 난민의 요건은 국적국 밖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자국 내에 서 이루어진 이주나 피난 등으로는 난민의 지위를 획득할 수 없다. 따라서 기후난민은 국제사회에서도 더욱 소외된 계층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난민 발생 저감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서도 사각지대에 머물게 된다.

…….다음달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