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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에너지 그리고 체르노빌의 교훈 Ⅱ

오 기 출(푸른아시아 사무총장)

인도를 따라가는 한국의 원자력 정책

나는 지난날 경향신문에 기후변화와 관련한 글을 기고하면서 원자력 에너지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러면 원자력 옹호론자들은 “원자력이 아니면 다른 대안이 있다고 보는가? 대답해보라”며 날선 공세를 가해왔다. 에너지 과학자들은 향후 25년 후 세계 전력 소비량이 현재의 두 배로 증가한다고 전망하면서 이산화탄소 방출의 주범인 천연가스와 석탄의 수요가 절정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원자력 에너지가 유력한 대안이라고 이들은 주장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나는 틀렸고 그들은 옳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말인가?

미국 원전 업계의 강력한 로비단체인 원자력에너지협회(NEI)는 미래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는데 필요한 천연가스와 석탄을 원자력으로 대체하려면 지구상에 수천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원자력에너지협회의 에이드리안 헤이머 이사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다만 그는 “앞으로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려면 다양한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그 가운데 원자력 에너지도 포함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일종의 신중론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원자력 옹호론자들은 원자력에너지를 유력한 대안으로 밀고 가고 있다. 타협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는 이런 태도를 인도의 에너지 정책에서도 목격하고 있다.

극단적인 빈곤을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 급격한 성장을 하는데 정신이 없는 인구 11억의 인도는 현재 세계에서 원자로를 가장 많이 건설하고 있는 나라이다. 인도의 원자력부는 온실가스 배출이 전혀 없는 원자력 에너지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원자력을 높이 평가하는 진짜 이유는 원자력을 통해 얻을 엄청난 전기 에너지 때문이다.
인도 마드라스에 있는 인디라 간디 원자력 연구소의 발데브 라지 소장은 “연구소에서 제시하는 에너지 정책은 단순하다. 방법만 있다면 최대한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인도는 핵에 관한 한 모든 전문 기술을 갖고 있다. 우라늄 연료는 콜카타 서부 광산에서 채굴하고, 원자로 부품은 남부 안드라프라데시 주 하이데라바드에서 공급받는다.
인도 원자력부의 대변인은 “후퇴는 있을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삶과 죽음이 에너지에 달려 있다. 인도의 에너지를 어디서 얻겠는가? 무슨 방법이든 찾아야 한다”
문제는 인도가 에너지 갈증에 시달리면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난 40여 년간 인도가 일관되게 보여 온 모습이다. 특히 지난 10년간 인도는 급격한 성장을 하면서 외부에서 통제할 수 없는 핵에너지 정책을 이렇게 펼쳐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원자력 에너지 정책을 보면 인도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다만, 핵을 외부에서 통제 받는다는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는 와중에도 원자력발전소를 해외에 수출하려는 데 대통령이 나서서 로비를 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한 나라일지도 모르겠다. 독일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원전을 폐기한다는 결정을 했다. 그런데 세계적인 추세와 달리 원자력 발전소가 다시 부활할까? 아마도 그럴 것 같다. 한국에서 그리고 한국의 원자력 옹호론자들이 주도해서 말이다.
원자력 에너지의 특성상 대중에게 접근이 되지 않고 시민의 통제를 받을 가능성이 없다. 특히 이 위험한 에너지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래서 밀실에서 진행되어 사고가 터져도 정보 통제를 하면 알 수가 없다.

나는 체르노빌의 교훈을 다시 새기고 싶다.
체르노빌의 원자로가 폭발한 이후 바람의 방향이 북쪽으로 불면서 방사능 구름이 북쪽에 있는 벨로루시로 이동을 했다. 인구 수백만 명이 사는 벨로루시로 방사능물질의 70%가 이동해 전체의 25%를 오염시켰다. 구 소련 당국은 오염지역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벨로루시 당국도 일주일이 넘도록 요오드 알약도 주민들에게 보급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어른들은 그 동안 오염된 풀을 먹은 소에서 짠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이로 인해 반감기가 짧은 강력한 동위 원소가 주민들의 갑상선에 퍼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얼마든지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이다. 원자력 에너지의 특징이 대중적 접근이 제한되어 있고, 시민의 통제가 되지 않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자력 관련 과학자, 기술자, 정책가들이 스스로를 열렬한 환경론자로 자처하기 전에 에너지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볼 것을 요구하고 싶다.
신중론이라도 가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울러 사소한 실수가 몇 초 만에 거대한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원자력이 아닌 다른 대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대중들이 접근 가능하고 시민의 통제가 가능한 안전한 에너지 정책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