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4-[Main Story] 기후변화, 기우(杞憂)와 확신 사이에서

고재광, (사)푸른아시아 기획팀장

선풍기를 끌어안고 열대야에 시달려 머리가 멍멍한 채로 출근하던 전철 안에서 트윗을 체크하던 중, 로저 에벳이라는 나름 유명한 영화평론가의 트윗을 보게 되었다.
그는 “지구온난화를 지금까지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결코 존중할 수 없다”면서 LA 타임즈 기사를 소개했다.
기후변화 연구 결과를 인용한 이 기사는 지구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폭염, 홍수, 가뭄 등을 지난 30년의 지구온난화 데이터와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었다. “지난 30여 년간 극단적인 폭염이 발생한 지역이 지구 표면의 1%에서 10%로 늘어났다” 여기에 덧붙여 “이 통계에 2012년 현재는 포함되지도 않았다”고 하며 기사를 끝맺고 있다. 지상으로 올라와 폭염에 노출된 채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짜증이 밀려왔다. 며칠 전 사무실의 에어콘이 고장났다. ‘폭염 난민’이 되어 동료들 몇몇은 까페로 떠나기 까지 했다. 집에서도 머리가 멍하고 사무실에서도 멍한 상황에서 도대체 기후변화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어떤 것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몇 가지 주장을 요약해 보자.

첫째, 항상 기온은 태양 흑점의 변이(1,500년 주기)때문에 오르락 내리락 했고, 지금의 폭염상황도 이러한 순환주기의 온난화 단계로 앞으로 다가올 빙하기를 더 걱정해야 한다.
둘째,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있어 왔던 미신 혹은 집단 히스테리의 하나에 불과하다. 현재까지도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간접흡연, DDT, 조류독감, 밀레니엄버그, 계란 살모넬라, 광우병, 석면의 공포를 분석해 볼 때, 이러한 공포들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조장되었고, 이에 따라 인류가 지불해야 했던 엄청난 비용은 어땠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셋째, 기후변화에 대한 인위적 영향은 일단 인정하겠다. 그러나 엄청난 돈을 들여야 하는 이산화탄소 감축프로그램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다. 빈곤, 에이즈, 핵전쟁 등 보다 심각한 위협이 더 많다.

검토해 볼만한 주장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매우 한가하다. 왜냐하면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을 지금 이 자리에서 해결해 나가야 할 긴급한 과제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덮어두고 일상으로, 더 걱정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느냐’의 태도를 보인다.
또한 기후변화 대응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입장들에 대한 단순 반대의 표명일 뿐, 현실적인 실천과는 무관한 담론의 성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논의의 차원에만 국한해서 말한다면, 결국 기후변화의 위험을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기우와 확신 사이에서 절묘한 선택지를 찾는 민주적 합의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인류가 당면한 현실은 한가하지 않다. 현재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가뭄, 홍수, 혹한, 사막화, 폭염 등은 식량가격 폭등, 환경난민, 수자원을 둘러싼 분쟁, 곧 전체적인 인간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확장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이러한 재앙은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이 별반 없는 저발전 국가의 가장 취약한 계급과 계층에 혹독한 시련으로 다가온다.

기후변화를 몇몇 음모가들의 허무맹랑한 과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반대로 기후변화의 위험을 과대 포장하여 자신들의 목적에 이용하고자 하는 책략가들, 환경보전이라는 공공재의 특성상 발생할 수 있는 무임승차의 문제, 기후변화 이슈 자체에 대한 ‘관심피로’ 현상(어떻게 되겠지 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특별히 없다), 현지 주민들과의 사업 진행과정에서 야기되는 소소한 갈등 등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만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NGO 푸른아시아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현실’에 토대를 둔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취약한 지역의 주민들이 잘 ‘적응’하도록 돕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그것이다.

온실가스 감축 프로그램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떠들 필요도 없다. 더 시급한 과제가 있다는 것을 외면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에 지자체나 국가가 더 열성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압박하는 것, 저개발국의 환경친화적인 에너지 도입을 위한 구상 및 실천을 모색하는 것, 기후변화 취약지약에서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들을 끊임없이 시도하여 작은 성과라도 축적해 가는 일상적인 실천이 더 필요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