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가 심은 행복 나무

오 기 출(푸른아시아 사무총장)

나에게는 지금 연락할 길이 없지만 꼭 만나고 싶은 분이 있다.

3년 전 6월, 서울 시청광장에서 사막화와 황사를 방지하자는 캠페인을 할 때다. 극단적인 기후변화로 사막화되고 있는 몽골에 한그루의 나무를 심자는 홍보 행사였다. 행사 중에 때가 절은 회색 잠바를 입고 얼굴과 몸이 깡마른 중년의 남자가 불안한 표정으로 모금함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 분과 가끔씩 눈이 마주쳤는데 무엇인가 고민을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때마다 나는 미소로 대답을 하려고 애를 썼다. 사실 캠페인 행사를 할 경우 누구에게나 미소로 맞이해야 하는 의무가 나에게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 분은 30여분 동안 모금함 앞에서 서성이다 용기를 내는 듯 했다.
그러다 한마디를 불쑥 던졌다.

“나도 나무를 심고 싶은데요.”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은 천원을 꺼내 모금함에 넣었다.

나는 이 분이 좀 특별하게 보여 이런 제안을 했다. 선생님의 이름과 주소, 이메일을 적어 달라고 했다. 그러면 선생님께서 주신 기부금으로 나무를 심고 나무에 선생님 이름을 적은 작은 이름표를 붙여 사진을 찍어 이메일로 보내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 분은 이름만 쓸 수 있고 나머지는 없다고 말했다. 자신을 잃은 어눌한 말투로 매우 간단하게 자신이 노숙자임을 밝혔다.
그래서 이 분에게 다른 제안을 했다. 나무에 붙일 이름표를 건네면서 선생님의 이름과 선생님께서 바라는 희망을 적어 달라고 했다. 그는 그동안의 어두운 표정이 사라지고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희망을 이렇게 썼다.

‘내 가슴에 푸른 나무를 심고 싶다’

지금도 나는 이 분의 표정이 잊을 수 없다. 그는 처음으로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자신이 한 일에 무척 만족해했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이미 푸른 나무가 한그루 자라기 시작한 듯 보였다.

나는 이 노숙자를 통해 또 하나의 것을 보았다. 그는 자신이 한 아름다운 몸짓하나로 이미 지구시민이 된 것이다. 지구시민은 지구촌이 겪는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소통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대단한 유명세를 갖고 큰일을 해야 지구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지구촌의 문제와 소통하고 공유하는 작은 관심 하나로도 지구시민이 될 수 있다. 지구촌은 하늘의 별 만큼 많은 지구시민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야 지구촌이 갖고 있는 극단적인 기후변화, 빈곤, 식량위기, 에너지위기, 난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돌아서서 시청역 방향으로 사라지는 그에게서 희망과 열정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당당함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후기)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분이 어떻게 지내는 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연락이라도 해 보고 싶지만 연락처가 없어 마냥 그가 연락해오길 기다리는 심정입니다. 그가 낸 천원은 이미 지구 생명을 살리는 나무가 되어 몽골 사막화지역에서 생명을 불어 넣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이 분도 역할을 했습니다.
이 분에게 자신이 기여한 나무가 잘 자라고 있고, 참으로 아름다운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3년 전 그 날 가슴에 심은 푸른 나무에게도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혹시나 이 분이 연락해올까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