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아시아에서 꾸는 꿈 – 만달고비 사업장 이동광 간사

 

이동광,?만달고비 조림사업장 파견 간사

2시간의 시간동안 공을 들인 사람의 이름이 작게나마 올라가는 영화의 엔딩크레딧을 보고 있으면, 불연듯 애처롭게 영화의 도입부, 맨 처음이 생각날 때가 있다. 주인공이 등장하거나 어느 배경이 보인다거나, 별볼일 없을 것 같았던 행인의 말이 결국엔 어떤 하나의 괘처럼 엮어돌아가는 것을 알때가 있다. 항상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일단 그런 감정이 들기 시작하면 스스로 시작한 논리의 크레딧은 영화가 끝나도 멈추지 않고 스스로 추억으로 이제 다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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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처음으로 만난, 물론 만났다고 하기에는 어색한, 하지만 처음으로 보았던 날이 생각난다. 안경을 껴서는 컴퓨터 모니터를 한참 보고 무언가를 열심으로 타자치는 모습이 기억난다. 난 그 때 속으로 , 큰일이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내가 혼자서 큰일, 이라고 했던 건 앞으로 몽골의 1년생활을 이야기할 사람이 털이 곧추서서 무언가 날카로운 인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큰일이다, 라고 말하고 나서 며칠후에 그 사람이 나와 함께 몽골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을때, 이번엔 반대로 , 다행이다라고 그 사람에게 말했던 것이 아마도 처음의 모습이 아니였나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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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농담처럼 진담을 한다. 그리고 진담처럼 농담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만달고비는 푸른아시아에서 버려진 곳 혹은 다른아시아, 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중 지리상 남쪽으로 외로이 떨어져있어 사람이 잘 찾지 않는 것도 이유라면 하나쯤은 될 것이다. 조림사업을 시작하고나서 두달이 되었을 무렵, 푸른아시아에서 두 사람이 찾아왔다. 주민들과 이야기도 하고 그 밖에 진행되어가는 사업을 확인차 방문한 것이다. 주민들과 깊은 대화는 부족한 몽골어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주민들과 회의도 했었다. 그리고 나는 한국인 국장과 식재된 나무며, 그 밖에 시설들을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때, 박간사의 전화가 왔다. “오기간사가 울어요무슨 말인가 싶었다. 운다니, 주민들과 이야기하다가 운다니 이건 무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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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달고비의 담당간사 오기와 함께 이곳에 왔었을 때, 오기는 저는 만달고비가 좋아요. 여름이 되면 우리 조림장에 싹이 나고 파랗게 되는게 멋있어요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알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해 주었다. 말은 하지 못 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 지금 함께 일하는 주민들과도 처음 만났었다. 낯선 몽골인들과 만나고, 나름 웃으며 발표도 했다. 주민들과 만난건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함께 일한 주민직원 선발을 위해서였다. 조림사업설명과 발표 모두가 끝나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선발한 주민들과 계약서의 갯수를 세어보는데 맞지가 않았다. 몇번을 다시 맞춰보았지만 숫자가 달랐다. 우리가 주민들을 예정보다 더 뽑은 것이다. 할 수 없이 몇명의 주민들에게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야했다. 오기간사는 자신의 실수라며 추가로 뽑은 주민 3명을 않혀놓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주민 3명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냈다. 빈 강당에 앉아서 잠시 조용한 시간이 지났고, 숙소로 갈 준비를 하는데 오기간사가 울기 시작했다. 주민들에게 일할 수 없다고 말하고 속으로 속상하고 미안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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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와 박간사에게 오기간사는 만달의 막내이다. 그리고 나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주민들에게도 딸처럼, 좋은 친구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같이 일하는 동안 가끔씩 오기가 언제 내려오냐고 물어보는데, 난 그럴때마다 곧 올거라고 한다. 꼭 딸이 오기를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같다고 생각했다. 오기간사도 주민들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울란바타르에서만 생활했다던 오기는 만달고비의 든 모습에 어느정도 마음이 편했던 것도 같다. 물론, 조용한 돈드고비의 생활 또한 한 몫 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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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전화를 받았다. 다시 울란바타르로 올라간지 한달이 되지 않아 다시 만달고비로 내려온다는 것이다. 무슨일이냐고 물었고,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얘기간사와 함께 내려간다고 했고, 난 어떤 직감같은 것을 느꼈다. 장난처럼 만달고비를 버리는 거냐고 물었고, 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몇 마디로 무언가 알 수 있었다. 설명은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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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의 섬머라는 영화를 보면 앞뒤로 필름이 지나간다. 처음시작한 첫날에서 다시 사백오십칠일, 다시 삼일, 백이십팔일, 이렇게 일반순서를 무시하고 영화는 하루라는 시간안에서 자유롭게 전체 500일을 관장한다. 500일 모두를 여기에다가 적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만달고비 담당간사 오기와 함께 했던 지금까지의 시간들과 말들을 이곳에다가 다 적을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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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수요일로 예정된 이별의 시간에 고마운 마음, 진심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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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길어지겠지만, 6월의 만달고비의 모습을 적어야 할 것 같다. (오기간사! 이해해줄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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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오면서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들이 몇개있다. 그 중에 하나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살지 않는 것이었다. 비록 몸은 조용한 도시에 있지만, 시끄러운 세상소리도 들어야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 부탁드려서 몇권의 책을 받았다. 요즘에 읽었던 책은 웬델 베리의 온 삶을 먹다, 라는 책이다. 마음대로 인용을 해도 되는지는 모르지만 (이번에는 출판사에게 이해해달라고 해야하겠지만…) 우선 하고 보면 이렇다. “먹거리의 정치학은 우리의 자유와 연관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과 목소리가 다른 누군가의 통제를 받을 경우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아직은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먹거리와 그 원천이 다른 누군가의 통제를 받을 경우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간과해 왔다. 수동적인 먹거리 소비자로서의 조건은 민주적인 조건이 아니다. 책임있게 먹어야 하는 이유 하나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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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에세이에서 이미 적었지만, 농사와 비닐하우스를 시작하려고 하다가 하지 못하였다. 조용히 책을 읽고나서 다시 농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임금을 받아서 제한된 식생활을 하는 것은 애초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푸른아시아의 사업 역시 결국엔 그 사업을 지탱하는 사람들의 생활과 생계가 지속가능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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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또 거칠어져서 온갖 방법을 다 찾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기존의 모았던 자료를 다시 정리하고, 농사와 비닐하우스 계획이 실행되지 않는다면, 실행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보기로 하였다. 목표는 분명했다. 수단이 중요하지 않아보였다. 다시 비닐하우스가 설치된 온 동네를 돌아다니고, 농사를 하는 곳에 찾아들어가 모르는 사람들과도 이야기하면서 정보를 얻었다. 그러던 중에 오기간사와 신기호 국장이 만달고비를 방문했다. 가만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신기하게 먼저 농사이야기를 꺼내셨다. 또 조용히 듣고 있었고,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농사를 지어도 된다는 것이었다. 혼자 기쁜마음을 숨기고 그래요..’라면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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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이 휴일이었지만, 어차피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농사를 지을만한 곳을 찾아 토양조사를 시작했다. 비닐하우스를 설치할 것이었기 때문에 기존 저수조를 다시 확인하고 여러가지 치수를 재었다. 이제부터 만들 만달고비조림장의 비닐하우스는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다. 설명해보자. 만달고비 조림장은 나무를 심고나서 옆으로 저수조를 판다. 그 저수조에 물을 채우고 다시 나무에 물을 주는 형태이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보면 여러가지 이유로 저수조를 사용하지 않을 때가 생기고, 일반적으로 방치된다. 현재 만달고비 조림장은 작년부터 4개의 저수조가 방치되고 있다. 그리고 이 저수조를 활용하여 올해는 농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저수조는 약 1m의 깊이로 파지기 때문에 일반 비닐하우스와는 당연히 다른 모습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만달고비의 특성을 고려해서 저수조 위를 덮는 형태로 만들것이다. 숨 좀 쉬어야겠다비닐하우스 이야기를 하다보니 적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서 두서가 없어지니 잠깐 쉬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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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의 보통 비닐하우스의 가격을 알아본적이 있다. 가로 20m에 세로6m의 비닐하우스의 가격은 약 300만 투그릭. 절대, 결코, 주민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가격대가 아니었다. 난 주민들이 돈을 조금 모아서도 할 수 있는 구조의 비닐하우스를 설계하고 싶었다. 그래야 혹시 푸른아시아에서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주민들이 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 (내 마음대로 난 이 프로젝트를 비닐하우스 프로젝트라고 지었다)에서 난 최대한 예산 규모를 줄여나가면서도 튼실한 구조를 만들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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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애초에 비닐하우스를 위해서 만든 저수조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계획된 사업도 아니었다. 괜히 했나, 하지 말자고 할걸, 누가 어떻게 하라고 했으면 좋겠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이제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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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조금 무책임한가. 그래도 모르겠다. 오늘 비닐하우스 작업을 시작했다. 가는 모래인 앨리스와 거름 그리고 그 밖에 구조물을 만들 나무 (쇠가 튼튼하기는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기에 나무로 최대한 튼실한 구조를 만들고 비용을 줄인다)로 이 곳에서 농사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앞으로 만들어질 비닐하우스는 4개소 정도이고, 상추 등의 식물을 심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토마토, 오이, 고추를 심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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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와 양파, 그리고 비닐하우스 4개동에서 나오는 야채를 가지고, 주민들과 함께 가을 어느때에 모여서 먹을 생각을 하면 혼자서도 기분이 좋다. 어쨋든, 그 시간이 올때까지는 오늘도 편하게 잠들기는 힘들게 생겼다. 이 비닐하우스가 다 설치되고, 만달의 그 거센 바람도 잘 견디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또 싹이 잘 나는 것을 보고 나서야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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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는 우리 도움없이도 비닐하우스를 지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지금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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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첫번째 에세이가 많이 길어졌다.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주신 3405명의 독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그럼 두번째 에세이는 짧게 써 보겠다. 원래 글못쓰는 사람이 길게 쓴단다, 이해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