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에 대한 기대 – 만달고비 사업장 이동광 간사

 

 만달고비 조림사업장 이동광 간사

사막이라는 뜻의 고비’, 그 이름을 지닌 만달고비에서 나무를 심는 방법을 소개한다. 우선, 비술나무와 포플러를 심을 자리를 마련한다. 그런 다음 지름 60cm, 그리고 깊이 60cm의 구덩이를 판다. 푸른아시아의 다른 조림장과 다른 것 없는, 이 과정에서 만달고비조림장만의 특징이라면 땅이 단단하거나, 진흙이거나 혹은 돌로 뭉쳐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용하는 것이 이라는 도구이다. 럼은 긴 쇠로 되어 있고, 끝이 날카롭게 되어있다. 양손으로 잡고 땅을 <깨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힘껏 내리친 럼이 돌에 닿고 또 그 돌이 깨지지 않을때 손으로 올라오는 떨림은 구덩이작업이 참 쉽지 않다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5월 만달고비에서 이 쉽지 않은 작업중에 조금은 기억될만한 일이 생겼다. 어느 날처럼 구덩이 작업을 마치고 게르에서 쉬고 있을때, 경비원 감바트르가 다가와 말을 하였다. “일이 너무 힘들고, 잘 쉬지도 못한다. 그리고 임금이 다른 곳은 오른 것 같은데 우리는 그대로다. 임금이 이대로라면, 우리 전부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오후 작업을 생각하던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래서 이제 일을 안 하시겠다는 건가요…’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속으로 하면서 남은 일들이 걱정되었다.

어쩌면 본능적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난 이 일을 주도한 사람들을 눈치껏 살피고 있었다. ‘누구지분명 전부는 아닐텐데…’, ‘그 사람을 찾으면 어떻게 해야하지’,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머리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이 생겼다. 눈앞에 일이 있고 미룰수도 없는 것들인데, 이제와서 하지 않는다고 작업거부를 하면 이제 어떻게 하느냐말이다. 속상한 마음과 함께 흥분된 마음으로 주도자를 찾아내는 작업을 열심으로 했다.

한국에서 나의 일이란, 학생으로 일종의 공부를 하는 것과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사회의 이런저런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면 이야기의 주제가 파업이나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흐를때가 있다. 그런 식이었다. 줄곧 한국에서 난 일관되게 노동자의 입장에서 사회문제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약자로서 노동자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몽골에 와서 완벽하게 회사측의 입장에서 주민직원들을 대하기 시작하니 나에 대해서 너무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나서 주민들에게도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주민직원들도 어떤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고, 임금문제로 (물론 통보없이 바로 작업거부를 하면 안되겠지만) 파업을 할 수 있다고 조용히 생각했다. 괴물이 되어선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작업거부로 오후작업을 하지 못하고 집으로 오는 45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앞으로 일을 어떻게 할지, 우리 주민들의 월급은 어떻게 할지말이다. 몽골 푸른아시아에서 주민들에게 지급하는 월급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이곳 만달고비 기준 코카콜라 1.25리터가 1300투그릭이고, 몽골음식인 초이왕이 식당에서 4000투그릭에 팔리고 있다. 한국과 별다를게 없는 물가에 어떻게 이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을지 평소 나도 의문스러웠는데 역시나 힘들었나보다, 하고 또 생각했다.

생각이 생각으로 이어지다가 지나간 시간들이 불연듯 파편처럼 튀겨서 떠올랐다. 경비원 빌릭 아저씨 게르에서 먹었던 음식들, 우리 직원들이 점심시간에 가지고 오는 점심밥들. 다 생각해보면 거의다 밀가루반죽을 튀겨서 만든 빵이나 고기 약간을 넣고 칼국수면처럼 만든 음식들이 전부였다. 대부분 거의 그런 음식들을 먹고 있었다. 그런 생각들이 들기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었다. ‘… ’

농업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나는 집에 돌아와서 감자와 양파농사들을 살펴보았다. 바람이 끊이지 않는 이곳 만달고비와 토양상태를 생각하면서 비닐하우스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그림을 그려보았다. 오만된 생각인지는 모르나 감자와 양파,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른 것들도 부족함없이 주민들과 함께 나누어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려고하는 것이 눈에 선하니 방법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닐하우스 모양이 된 곳을 찾아가 한번 볼수있냐고 물어보고서 남의 집에 들어가서 비닐하우스 사진을 찍어오고 모양도 그렸다. 그러다가 우연인지 행운인지 농업관련 교수였던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토마토와 오이, 고추 등도 가능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다는 생각과 함께 괜히 힘이 났다. 작업을 시작하고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지만, 알아갈수록 기쁜 농사라고 생각했다. 이 과정을 준비하며 항상 마음에 둔 것은 되도록 돈을 많이 쓰지 않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선 비용이 많이 들면 하기 힘들고, 가능성을 알아보는 단계에서 고비용은 부담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후 한국으로 돌아가도 비닐하우스와 농사를 지속적으로 해나가려면 나의 일시적인 기부같은 행위보다 되도록 일상적은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업기획안을 만들고 몽골 울란바타르 본부에 발송했다. 뿌듯한 마음과 함께 앞으로 비닐하우스안에서 자랄 토마토와 오이 등이 눈에 선하였다. 빌릭, 감바트르 아저씨와 함께 농사하고 즐겁고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기획안은 여러가지의 이유로 실행되지 않을 것 같다. 아쉬운 마음과 속상한 마음이 가득하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마음으로 슬픈 마음이다. 지금은 우선 기다리거나 생각하는 방법뿐이 없다. 처음 이 기획안을 생각했을때 목표가 있다면 방법은 무엇이든 좋다는 마음으로 다시 고민해야 할 것 같다.

5월도 어느 날이 지나서 구덩이 작업을 마치고 포플러와 비술나무, 7,000그루가 도착하였다. 땅이 좋지 않은 것도 있고 해서 식재할 나무의 수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완성된 구덩이에 거름과 테라코템이라는 토양보습제를 넣는다. 그리고 그 위로 물을 우선 붓는다. 그리고나서 앨리스를 넣고 흙을 다시 섞어준다. 그리고나서 나무를 똑바로 세우고 나서 뿌리부터 흙을 부어서 심는다. 저상심기를 하는데, 이것은 강수량이 적고 건조한 이 곳에서 가능한 습도를 유지하고 확보하려는 이유에서이다.

오늘 (17), 막 나무 7,000그루를 모두 심었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간혹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게 가능해?’라는 말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내 사람들은 그게 가능한 이유를 그들이 아는 한 열심으로 설명한다고 한다. 나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그게 가능한지 고민하기보다는 그게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다. 종교가 있는 사람과 같은 마음으로 한켠 기대해보는 것이다. 내가 심는 몇그루의 나무가 어떤 좋은 일들을 지금과, 조금 시간이 지난 나중, 어느때에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