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짧은 글 – 만달고비 사업장 이동광 간사

 

 

이동광, 만달고비 사업장 파견 간사

울란바타르를 떠나 이 곳 만달고비에서 약 한달간의 시간동안의 많은 일을 짧게 적어내려 하니 복잡한 마음이다.

만달고비로 오는 길에 차가 모래에 빠져 세찬 바람에서 차를 밀어올렸던 일이나, 도착한 이 곳에서 계약하려던 숙소가 사라져 버린 일, 그래서 살 집이 없었던 기억이나 60리터 온수기가 벽에서 떨어져 욕조가 부서지고 다시 설치하는 중 벽이 뚫렸던 일, 그리고 어느 몽골인이 ‘설렁거스(한국인)’라면서 부르며 따라오던 일, 그리고 술취한 몽골 남성이 뛰쫓아 왔던 일 등 참 많은 일 들이 있었다.

적고 나니 다시 한달을 새롭게 하는 기분이다.

서툰 언어로 낯선 곳에서 산다는 것은 사람들 앞에 놓여서 놀이개가 되는 강아지나 작은 곤충이 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비록, 그 사람들이 사랑스런 모습과 눈빛을 보낸다 하더라도 그 모양을 받아들이는 객체로서는 그 의미를 오롯이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곳, 만달고비에서 외국인은 내가 알기로 5명이다. 푸른아시아에서 파견된 한국인 둘, 그리고 영국인 교사 3명이다. 집을 나서 밖을 나서면 주위 몽골인들이 나를 쳐다본다. 신기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도착하고 삼일이 지나고 주말. 슈퍼마켓에 가서 먹을 음식을 사서 오는 길이었다. 뒤에서 설렁거스!, 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국인’, 우리가 못 들을체 하며 걸음을 재촉하니 이번엔 ‘어이’, ‘체’라면서 부르며 따라붙는다. 이번엔, ‘한국인?’이라며 서툰 한국말도 한다. 아직 살 거리는 남았지만, 둘은 우선 집으로 향했다.

이번엔 며칠전. 이젠 익숙해진 길. 슈퍼마켓에 들러 이것저것을 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가던 길쪽 저 멀리 어떤 술취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아, 느낌이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며 방향을 살짝 돌렸다. 역시나 따라붙는다. ‘어이’라며 멀리 부른다. ‘어이, 어이, 체, 체’라는 소리를 계속하며 점점 더 빨리 오고 있었다. 집 근처에 올 즈음 뒤에 있던 사람이 간격을 좁혀오며 뛰어오고 있었다.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몽골인을 피해 뛰어 집으로 들어왔다. 숨을 고르고 의자에 앉았다.

평소, 그리고 국제개발원조라는 영역에 있으면서 파견국의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고 많이 노력했다. 이 곳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한 마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고, 울란바타르에서 유난으로 피해다녔떤 도둑들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같은 사람이므로, 사는 모습은 다르더라도 생각하거나 마음으로 느끼는 인간은 다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 동안 뒤를 쫓아오며 부르던 소리는 잊기 힘들었다.

지난 수요일, 쉬는 날. 경비원 빌릭 아저씨 게르에서 몽골요리인 보쯔와 호쇼르를 같이 만들기로 하였다. 필요한 재료인 양고기와 낙타고기는 내가 사가기로 하고 아침에 길을 나섰다.

근처 고기를 파는 곳에 들렀으나 아침이라 그런지 아직 고기가 많이 없었다. 옆에 가게 살짝 들러 고기가 있는지 확인해봤으나 없었다. 음식의 재료가 없으니 가도 소용없는 일, 어떻게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서 한 몽골인이 내 등을 만지며 이야기한다. “이 곳에는 지금 고기가 없어요. 그리고 고기도 비싸요. 1kg에 7-8000투그릭 해요. 대신 저기 넘어가면 흰 건물이 있는데, 거기는 싸고 고기도 많아요”

낯선 사람. 천천히 말을 듣고 이해해가며 알았다고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면서 그 길쪽으로 가려고 한다. 다시 그 사람이 말을 한다. “이 곳에는 언제 왔어요?” 머리 속으로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같은 사람. 같은 사람이다.’ 대화를 해가며 그 흰 건물쪽으로 함께 걸어간다. 그 흰 건물은 골목으로 들어가는 곳에 있다. 골목이라… 처음 만나는 외국인, 아니 외국인은 우선 ‘나’고, 현지 몽골인과 골목길이라…내가 얼마를 가지고 왔더라…

한 편 긴장하는 마음, 한 곳으로는 현지 친구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품고 길을 가면서 어쩐지 이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골목 골목을 돌아 도착한 흰 건물에 들어서니 과연 고기도 많고 찾던 낙타고기도 있었다. 더구나 채소며 과일이 많아 그 동안 돌아다녔던 곳보다 더 좋았다. 양고기와 낙타고기를 사려하니, 낯선 그 친구는 좋은 양고기는 이 것이며, 낙타고기는 여기가 맛있다며 설명해주었다. 계산을 하고, 양파도 몇개 고르고 거스름돈도 그 친구가 받아서 주었다. 2만 투그릭. 큰 돈을 받고서 오늘 아침 처음 본 나에게 아무런 망설임 없이 건네는 그 사람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뭐라고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그건 또 다른 편견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 마음을 정리했다.

작년, 난 몽골에 왔었다. 푸른아시아의 다른 사업장인 바양노르에서 짧은 일주일을 지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때도 이름은 국제개발의 명찰을 달았으나, 무엇을 해주고 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도움을 주러 간다는 나름의 흥분은 그 짧은 시기동안 이 곳 몽골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는지 이해하는 시간일 뿐이었다. 없어도 되는 것들, 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 둘을 열심으로 봉합하고 온 작년이었다.

조심하며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낯선 현지인에 대한 편견이 자리잡기 시작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다행으로, 나를 안내해주었던 친구와 악수도 하고 많은 이야기를 하며 스스로에게 많은 위로를 느꼈다.

조림장에서 작업을 하면서 나와 함께 일하는 현지 몽골인직원은 25명이다. 걸어다니며, 앉아서 구덩이 작업을 할때에도 속으로 주문을 외우듯이 혼자 중얼거릴때가 있다. ‘나는 현장매니저가 아니다. 단지 이 곳에서 이 사람들과 같은 위치에 있는 직원일 뿐이다’ 불안할때에 오른손을 심장위로 가져다대는 것같이 마음이 스스로 위로되는 말이다. 같은 사람. 5명뿐인 이 곳 타지인 중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한 사람인 나도, 그리고 이 곳에서 가족들과 함께 일상을 지내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같은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때면 나 스스로가 많은 위안을 느끼게 된다.

만달고비의 4월은 아직 춥다. 어제는 눈도 내리고 잠시였지만 비도 왔다. 추운 바람에 ‘아, 이래서 바람이 사람도 날리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해도 해 봤다. 작업도 못하고 쉬는 일요일로 대체했다. 고작 한달. 앞으로 하루하루 또 어떠한 일들이 있을지 기꺼운 마음으로 오늘을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한다. 평탄한 하루는 아닐지라도 언제나 즐겁게, 고민은 있을지라도 언제나 해결의 묘미를 기억한다.

그리고 보니 몽골의 하늘은 오늘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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