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도 설레는 신참 생활 – 바양노르 사업장 파견 간사 박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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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절차를 마치고 울란바타르 칭기스 국제공항을 나섰던 첫 발걸음이 기억난다.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와 거침없는 바람. 길고 지루했던 장마와 이후에도 이어지던 무더운 공기의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몽골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나는 8월 말 ‘사막화 방지 사업’을 몽골 현지에서 꾸준히, 그리고 조금씩 키워나가고 있는 ‘푸른 아시아’의 현장 파견단원 자격으로 몽골에 왔다. 한반도의 약 7.5배 크기의 광활한 몽골에서도 ‘바양노르’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서 이미 6개월이 넘게 조림사업을 관리하고 있는 4명의 파견단원과 합류해 함께 일을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매순간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힘겹게 받아들이느라 정신이 없는 수도 울란바타르를 떠나 1년간 생활하게 될 ‘바양노르’로 떠나는 기분은 공항에서 느꼈던 첫 인상과는 또 다른 설레임을 안겨다주었다. 차창 밖으로 그저 광활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대지가 상대적으로 앙상한 포장도로 너머로 펼쳐지고 또 펼쳐졌다. 수많은 동물들이 떼를 지어 풀을 뜯고 있는 장관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몽골의 일상의 풍경을 신기한 듯 보고 또 바라보았다.

울란바타르에서 서쪽으로 약 190km 떨어진 바양노르는 쭉 뻗은 지평선 마다 원만한 산으로 펼쳐져 있는 드넓은 들판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었다. 도착했을 무렵 때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귀한(몽골의 연평균 강수량은 400mm 가 채 되지 않는다.) 곳에서의 비라 새삼 반가웠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을 하는 우리들에게는 더욱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비를 몰고 왔으니 귀한 손님’ 이라고 기분 좋은 농담을 권했고 또 누군가는 ‘올해는 유독 비가 많이 내린다’ 고 알려주기도 했다.

바양노르에 도착한 것은 한밤중이었다. 그러나 이 곳에서 생활하고 있던 ‘푸른 아시아’ 관계자분과 파견단원들은 실례를 범한 신참을 반갑고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양노르에서 이미 6개월 이상 생활하며 현지 조림사업을 관리하고 있던 4명의 파견단원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20대 초, 중반의 대학생들이었는데 또래들이 한국에서 쉬이 누리는 편의, 예컨대 인터넷이나 문화활동 등등, 에 비하면 열악하기 그지없는 타국의 작은 마을에서 밝고 씩씩하게 맡은 일들을 척척 해나가고 있었다. 유창한 몽골어로 현지 주민들과 어렵지 않게 소통하고 있었고,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서부터 조림사업과 조림장에 관련된 지식과 소식들도 잘 알고 있었다. 봄부터 여름 내내 열심히 나무를 심고 가꾸느라 새까맣게 탄 피부가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해 왔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과 미소와 행동에 맡은 일을 척척 해 나가는 이의 자신감과 당당함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과 함께할 앞으로의 시간이 분명 즐겁고 값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바양노르에서 보내는 시간도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생활을 익히고, 언어를 배워나가고, 함께 조림작업을 하는 현지 주민들을 한 분 한 분씩 알아가고, 조금씩 이 곳 일상에 적응해 나가는, 정신없이 바쁘기도, 즐겁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현지 주민들은 낯선 이방인에게 친절하고 선배(?) 파견단원들은 본인들의 일들만으로도 바쁘고 벅찰텐데도 부러 시간을 내어 현지 생활의 작은 팁에서부터 조림작업에 대한 노하우까지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이젠 나도 주민들에게 먼저 미소를 머금고 (어색한 몽골어 발음이지만) 인사를 건네고 마을 곳곳을 내 동네처럼 산책하기도 하고 땀 흘리며 파 놓은 구덩이에 묘목을 심으며 부디 잘 자라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참으로 풍성하고 따뜻했던 그 시간 덕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수많은 배워야 할 일들, 해 나가야 할 일들을 또 다른 설렘과 기대감, 그리고 자신감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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