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에세이 – 바가노르 사업장 파견 간사 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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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노르의 여름은 푸르고, 촉촉하고, 무덥다. 벌써 내가 ‘우리 동네’ 바가노르에 이사 와서 시간을 보낸 지도 3개월이 지나고 4개월째가 되어 가고 있다. 그 동안 이 조용하고 한적한 도시는 새로 조경도 하고, 새로운 건물들도 들어서고, 여러 가게들이 생기거나 사라지는 등 여느 발전하는 소도시다운 변화를 하고 있다. 또한 날씨가 따뜻해짐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식물들이 여름 맞이로 분주히 녹 빛으로 변하고, 한적하던 밤거리는 해가 질 때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생기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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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처음 몽골 땅에 발을 내디뎠을 때만 해도 영하 20도의 기온으로 온 몸이 얼어붙었다. 공항을 나와 숙소로 이동하는 캄캄한 밤에 나를 에워싸는 차가운 공기, 바닥을 뒤덮은 채 녹아 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꽁꽁 얼어버린 눈. 7월이 된 지금, 막바지 겨울이었던 그 때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30도, 40도의 무더운 날씨를 자랑하는 여름이 되었다. 그 전에는 출근길에 나무가 살아있는지조차, 아니 나무가 있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잎사귀 하나 없었는데, 5월이 지나고 6월을 맞은 어느 날부터는 초록 빛 나뭇잎이 무성해져 있었다. 나는 나뭇잎이 돋아나기 바로 전 1주일 동안 출장을 다녀왔기 때문에 잎이 가득히 돋은 나무는 나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바가노르 사업장에서 가장 나이 많은 나무는 7살짜리 포플러(올리아스)들인데, 키가 2m를 훌쩍 넘어서 멀리서 보아도 보이고, 정말 숲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느껴지게 만든다. 이렇게 숲이 되려는 아름다운 나무들을 보면 매일 너무 많이 걸어 다녀서 몸이 아프고, 덥다가도 갑자기 추워지는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움직이기도 싫고, 흙 냄새가 지겨워 일이 정말 하기 싫다가도 어느 새 어서 빨리 짧은 여름에 많이 자랄 수 있도록 가지치기를 해 주고, 쳐다보기조차 싫어하는 애벌레를 잡아 주는 나를 발견한다. 사람인 내가 이렇게 나무의 겉에서 보이는 일을 해 주는 동안 나무들은 사람이 볼 수 없는 일을 하느라 바쁘다. 물을 빨아 올려 잔가지와 나뭇잎 끝까지 곳곳에 물을 전달하고, 키가 크기 위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끊임 없이 지속한다. 이렇게 미래에 울창한 숲을 이룰 이 나무들은 가지 속에 들끓는 벌레들과 싸워 이겨내면서, 나뭇잎을 먹어 대는 벌레들을 견뎌내면서 그렇게 힘겹게 또 한 살을 먹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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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겨울이 끝나고 봄에 이어 여름을 맞이한 이 시간, 세 번째 계절을 만난 지금이 올 때까지 그 동안 내게도 적지 않은 일이 있었다. 가장 큰 일이라면 나의 ‘가족’과의 일이고, 그 다음으론 매일의 일과인 조림 활동,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일이다. 내가 너무나 부족하고, 꽉 막히고 답답한 점이 있어서 트러블을 많이 만들기도 했고, 성실하지 못해 나의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이 나로 인해 피해를 받기도 했다. 또한 하루 종일, 한 주 내내, 3개월 간 반복된 똑같은 일상 때문에 열심히 해 보겠다는 마음이 많이 느슨해졌다. 게다가 주민들은 돈 때문에 조림지 일을 나와서는 일을 제대로 하지도 않고, 조림지 매니저인 우리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해고했더니 노동청으로 갔다가 돌아와서는 자신들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몽골어도 제대로 못하는 못된 매니저라며 경찰도 부른 주민도 있다. 조림지 매니저 따위는 자신들을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듯이 우리를 대하고,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맥이 풀린다. 대체 어떻게 노동청이라는 곳에서, 협력을 해 준다고 약속한 곳에서 앞장서서 사람들에게 (임시이긴 하지만) 직장을 제공하는 이 조림지의 담당자를 우습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매니저는 아무것도 아닌, 노동청에 속해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하게 만드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또한 월급 날만 되면 시급을 제대로 계산한 게 맞냐며 한꺼번에 몰려와서 한꺼번에 자기 주장을 하고, 집까지 찾아 오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폭포수같이 쏟아내고는 설명도 듣지 않고 ‘치 모(넌 나쁜 애야)’ 라고 해 대는 주민들 때문에 정말 머리 아프고, 일이 귀찮게 생각될 때도 많다. ‘대체 이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미 없는 생각을 안겨 준다.
모든 상황은 좋건 싫건 내가 외국에 나와서 살며 나 자신과 싸워 나가는 과정이다. 물론 대부분은 내가 처음 이 곳에 오면서 ‘직장인 신분’이 되었기 때문에 만나는 상황이다. 정신 차리고 똑바로 상황을 바라보아야 싸움에서 지지 않는다. 3개월을 넘어서며 충분히 익숙해졌을 만한 주변 환경은 내게 또다시 새로운 과제를 던져 주며 낯선 곳임을 잊지 않도록 해 준다.
또 나는 이 곳에 오며 난생 처음 완전히 낯선 곳에 왔다는 사실 때문에 경직되고 큰 두려움에 갇혀 있기도 했다. 물론 나는 여전히 트러블을 만들기도 하고, 두려움도 완벽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노력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나를 항상 사랑해주시는 분으로 인해 여전히 시간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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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이 곳에 첫 발을 내디딘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7월을 맞았다. 어느 새 낯선 향기가 이제는 익숙하리만치 내게 스며들었다. 느린 듯 빠르게, 이제서야, 또는 벌써 몽골에서 4개월을 지내고 있다. 차가웠던 겨울 바람이 따스한 햇살로, 무성한 녹음으로 변하며 나에게 새로운 시간들을 선물하고 있다. 다가올 가을과 겨울의 새로운 모습도 기대하며 오늘도 하루의 긴 햇살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