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경의 바양노르에서..] 수채화의 완성, 새로운 끝
110213 수채화의 완성, 새로운 끝
따뜻한 녹차 라떼 한 잔과 오랜만에 마주앉은 반가운 얼굴. 지난 1년 동안의 우리의 모습을 조금쯤 담담하면서도 뭉클하게 떠올리는 시간. 그래. 그 모든 것이 끝나가기 시작하는 이 순간, 그동안의 모든 것들은 조금쯤 미화되고 또한 새로운 조명에서 새로운 빛을 입는다.
말하자면 본격적인 의미부여작업의 시작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진행형이던 동안에도 나의 의미부여작업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것은 확정적이기보다는 유동적이었다. 말하자면 흰색 스케치북에 4B연필로 밑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달까. 반면, 내 속에서 몇 번이고 되새김질이 끝난 지금의 그것은 밑그림 위에 수채 물감을 칠하는 일이다. 반투명한 색채 아래로 밑그림의 흔적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나는 거친 연필의 필선에 순순히 수긍하기도 조금 엇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앞으로 나는 나의 2010년을 지금 칠하는 색깔들로 기억할 것이다.
치열했던 내 1년이란 시간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동안의 궤적 그 모두를 기억할 수는 없으니까. 다만 나는 잃어버린 1년을 몇 가지 색채들로 추억할 수 있을 따름이니까.
흥미롭게도 전원적인 곳에서 나무를 심는 작업을 했던 나의 올 한해는 풍경화이기보다는 추상화이다. 칸딘스키나 피카소의 그것처럼 강렬하고 무질서한 내 그림은 아마도 내 그림을 마주하는 사람을 조금쯤 거북하거나 불편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결코 평온하지도 담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는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미온한 나의 성격이 걸어온 그 동안의 색채들과 사뭇 그것도 아주 사뭇 다르게도 꽤 격정적이고 꽤 히스테릭했다.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어떤 대상들에게 이성을 놓고 소리지르기도 했고, 정말이지 짐승처럼 울부짖기도, 스산하게 몰아치는 밤바람 속에서 흐느끼기도 하고, 오기 어린 울음을 삼키며 나무들의 가지를 바싹바싹 쳐내기도 했다.
사막화 대응이라는 슬로건 아래, 낯선 이곳 지역 주민들을 규합하고 그들과 그리고 다른 많은 참여 주체들과 같은 꿈을 꾸어내어야 하는,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가 그 꿈을 함께 실현해나가야 하는 이곳에서의 사명은 생각보다 뚜렷하지 않아 나를 헤매게 했고, 하지만 또 그럼에도 충족시켜야 할 책임들은 숨돌릴 틈 없이 많아 나를 끊임없이 짓눌렀다. 다만, 정말 의미 있는 일을 직접 하게 될 것이란 단 하나의 마음이 나를 이곳으로 끌어들이고 지탱시켜왔듯, 그 모든 것을 지나 보냈다는 단 하나의 사실이 내 그림을 향하는 나의 시선을 평온하고 담담하게 한다.
우리는 미소 지으며 결론지었다. 그래, 우리가 어디 가서 또 이런 경험을 했겠냐고. 우리 많이 자랐을 거라고. 정말 고생 많았다고. 하지만 우리는 분명 기억한다. 정신력도 체력도 고갈되어버릴 것만 같았던 기억만으로도 아찔한 순간들도 있었다는 것을. 사실 심지어는 돌아가려는 이 순간들에도 여전히 성가시고 묵직한 그 순간들은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다.
나는, 신 간사님은 우리의 지난 1년을 새롭게 완성했다, 몇 마디 말들로. 우리가 한 일들은 비록 정부 혹은 대기업의 그것처럼 효율적이지도 체계적이지도 않고, 따라서 어쩌면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신경을 쓰고 부딪혀야 하는 성가신 것이었을지언정 그들이 하지 못하는 아주 필요한 일이라는 것. 조림사업에도 지역개발에도 서툴고 미숙했던 그리고 여전히 그러한 우리가 의욕과 시간 안에서 조금쯤 덜 서툴고 덜 미숙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서툴고 미숙한 우리로도 기능한 일이라는 것. 물론 후회와 아쉬움도 많이 남았지만 우리 개인적으로도 단체적으로도 그로 인해 우리의 다음이 적어도 이번보다는 조금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
우리의 새로운 끝. 이 끝을 통해 우리는 또 다른 시작을 꿈꾼다. 그래서 어쩌면 ‘새로운’ 쪽은 시작보다는 ‘끝’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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