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경의 바양노르에서..] 현장을 지키는 일

1122 현장을 지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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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내린 눈으로 바양노르로 향하는 길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며칠 UB에서 생활하다 오랜만에 바양노르로 향하며 조금쯤 설레던 나의 눈에 하얀 눈은 또 하나의 감상이라는 길벗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눈이 곧 재앙이었음을 여실히 확인해야 했다. 명절이 신나는 것은 현실로부터 일정 부분 벗어난 아이들의 천진함일 뿐, 현실을 짊어져야 하는 어른들에게 그것은 여러 복잡다단한 귀찮음의 집합일 뿐이다. 생각해보니 눈 역시 그저 출근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라는 누군가의 한숨 섞인 푸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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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곧 나를 향해 밀려드는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파도에 함몰되었다. 집 안의 물이란 물은 온통 얼어붙어 ‘생활용수’라는 말이 무색해져 있었고, 명색이 보금자리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숨을 쉴 때마다 쉴새 없이 눈 앞으로 사라지는 입김을 목격해야 했다. 셋은(지 간사님은 출장으로 UB에 남고, 잉크마 간사님은 또 출장으로 이곳을 찾으셨다) 즉시 두 개의 난로에 들러붙어 어떻게든 불씨를 만들어보고자 신문지를 집어넣고, 장작을 집어넣고, 석탄을 넣었다 뺐다 성냥을 켰다 껐다 온통 난리를 쳐보았으나, 꽁꽁 얼어붙은 것은 물 만이 아니었던지, 장작으로는 좀처럼 불이 옮겨 붙지 않고, 얼어붙은 공기는 도무지 데워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결국 배가 고픈 우리는 라면이라도 끓이기 위해, 얼어붙은 자물쇠를 라이터로 녹인 후 창고를 열어 리어카를 꺼내 물 통 두 개를 싣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다.

지난 여름만 해도 현장을 지킨다는 것은 많은 일들에 치이고 이곳을 방문하는 많은 이들을 맞이하고 떠나 보내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바쁘디 바쁜 정신 없는 일이었는데 겨울이 오자마자 그것은 춥고 불편함을 무릅쓰는 일임과 동시에 몇 건의 문서 작업과 다운로드 받은 영화들 몇 편이 전부인(물론 문서 작업과 영화의 소중함을 등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현재의 느낌을 표현하자면 말이다) 이곳의 지루함, 외로움, 단절감과 적막감들을 지키는 일로 돌변했다. 순간, 나는 나의 지난 입장이 철회되어야 할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 width=300 height=225>내부적으로 몇 번의 의견 충돌이 있었다. 여름보다는 현장을 지켜야 할 필요성이 한층 가감된 겨울에 굳이 많은 어려움들을 무릅써가며 이곳을 지켜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각자의 성향에 따라 서너 가지로 갈린 대답들을 내어 놓았던 것이다. 누군가는 그럼에도 현장의 관리자가 현장을 관리할(실제로 경비원들이나 숙소 등은 자리를 비웠을 경우 책임을 등한시하거나 고장이 나는 등의 일들이 생기곤 했다) 기본적인 당위성을 들어 최대한 (하지만 여건 상 최소한일 가능성이 높은) 보온이나 생활용수 공급 등의 조건을 보완한 후 현장을 지키자는 의견을 펼쳐 보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정도의 일은 굳이 이곳에 남지 않더라도 가능하다는 근거를 들며 현장 관리자 역시 몸을 데우고 마실 물을 쉽게 얻을 권리가 있다 말했다. 나는 필요성이 확실하다면 현장에 남을 수 있겠지만 정말 살 수 없다 생각되면 재고하겠다 정도의 평소처럼 미온한 견해를 내어놓았었다.

따지고 보면 현장에서 바삐 진행되는 일이 없다 하여 현장의 일이 없다 할 수는 없다고 내심 생각하기는 했다. 이곳에서 현장의 목적은 기후변화가 진행되는 말 그대로의 현장에서 대안을 직접 실천하는 일이고, 그 중에서도 현장 간사가 할 일은 주민들과의 실제적인 관계 형성을 통해 사업을 직접적으로 진행하는 일인 탓에 어쩌면 직접적인 일이 없는 기간에도 현장을 지킨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주민들에 우리의 진정성을 보이는 일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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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후면, 주민들은 스스로 사업장을 관리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낼 바탕을 이곳에서 찾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꿈꾸고 있는 그 미래가 가능한 일임을 그들도 함께 믿고 함께 그리고 스스로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기초 공사를 위해서는 주민들과 우리는 끈끈한 신뢰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현장을 지키는 일은 주민들의 마음을 사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주민들이 우리의 진심을 인정함으로써 가능할 일이다. 몽골의 겨울이 너무나 혹독하여 혹시나 우리가 현장을 지키지 못한다고 해도, 최소한 그러고자 노력했던, 그들과 함께하고자 했던 나의, 우리의 그 진심만큼은 현장을 지킬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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