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경의 바양노르에서..] 몽골의 집들이

1109 몽골의 집들이

 

집이라는 공간은 어느 시간 공간에서나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모양이다. 새로운 집을 얻은 후, 지인들을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고, 지인들은 또 새 집을 얻은 이를 방문하여 축하하고. 한국의 의례적인 집들이는 이곳에서도 통용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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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서 바양노르 솜에서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게르를 지어주었다. 우리 조림장의 주민 중 09년도 경비원 조카 아저씨와 잉크 볼드라는 남자 주민 두 명 가량이 여기에 해당이 되었고, 이 둘은 벌써 며칠 전부터 우리에게 집들이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며 초대를 요청했던 차였다. 당일이었던 오늘, 주민 중 하나인 후를레 아저씨는 약속 시간 10분 전부터 숙소를 방문하여 이전에 빌렸던 돈을 청산하며 집들이를 가자 재촉했다. 그래 놓고서 왠걸, 금새 준비를 마치고 조림장 앞으로 나갔더니 나온 주민들이 몇 되지 않는다. 만사 느긋한 우리 몽골인 주민들은 그렇다면 하나 하나 집을 찾아가 보마 하고선 어슬렁 어슬렁 20분 정도를 걸어 바트히쉭 아주머니네로 향한다. 이래서는 정말로 한 집 한 집을 다 찾아갈 기세라 나는 금새 내 핸드폰을 쥐어주며 전화를 돌리자 보챘다. 그렇게 하나 둘 모여 열 명 안팎이 모인 것은 약속했던 12시가 훌쩍 넘은 12시 40분 그제서야 우리는 목적지로 향했고, 1시가 다 되어서야 모두가 조카 아저씨네로 모였다. 하긴, 모두가 모여 즐기자는 기본 목적을 편리하게 만들고자 약속시간을 잡았을 테니 그러고 보면 시간 자체가 중요한 일은 아닌 셈이다.

집들이 집은 새로 설치한 게르. 난로 위엔 벌써 음식 준비가 한창이고, 옆으로 상 위엔 고사상 돼지머리처럼 잘리지 않은 고기가 몸통 채로 올라가 있고 몽골 제사 음식인 바우(빵)과 사탕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몽골 전통 대로 코담배와 사탕, 수태차를 한 사람씩 돌리기 무섭게 마유주가 등장했다. 중천에 뜬 해가 무색하게 주인인 조카 아저씨는 보드카와 몽골 소주, 맥주도 동시에 각 사이즈의 잔에 따랐다. 우리와는 달리 첨주 문화인 이곳에서는 몇 개의 잔을 손님들에게 돌리면서 채우고 비우고를 반복한다. 툴루(‘위하여’)를 외치고 술잔을 비우기도 하지만, 반 잔 정도를 비우고 주인에게 잔을 건네면 주인은 그 위로 술을 더 채워 다른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그 많은 손님의 수만큼 잔을 준비할 필요가 없는 꽤나 경제적인 선택. 조림장 매니저로서 대접받은 우리는 예외 없이, 하지만 동시에 모두의 지독한 감시(좋게 해석하자면 따뜻한 관심쯤 되겠지만)을 받으며 술잔을 여러 번 비워야 했다. 마치 주고 받는 대화처럼 술잔은 때로는 빨리 때로는 천천히, 하지만 끊임없이 오고 갔다. 주인은 손님들이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부지런히 술잔을 권하고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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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손님 측에서 주인에 술을 권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일종의 덕담을 한 후에 행해졌다. 새 집을 얻은 주인에게 짧은 축하 인사를 한 후에는 축의금 위에 얹은 술잔이 주인에 전해졌으며, 그 다음에 사람들은 각각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하나가 부르기 시작하면 모두가 소리를 모아 함께 부르곤 하는데, 몽골 사람들은 정말이지 대부분 노래를 참 잘한다. 마치 (비록 TV에서 접한 풍경이긴 하나)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처럼. 절제된 감정들이 구성진 가락 에 가득가득 녹아 있다. 한껏 고무된 열기 안에 박수를 치며 주민들과 눈빛을 맞추다 문득 더 이상 이들 가운데의 내가 이방인이 아니라고 느꼈다. 분명 아직 의사 소통에 빈틈이 있고, 노래 가사들은 여전히 잘 들리지 않지만, 나는 어느새 그들 속에 섞여 우리가 되어 있었다. 주민들 속의 나는 이제 이렇듯 당연하고 편안하다. 내 어깨로 머리를 기댄 아므라와 끈질기게 술을 권하는 후를레, 잉크 볼드, 조카 등 아저씨들과 그런 그들을 말리는 체체게 아주머니, 우리를 귀가길을 걱정해주는 나랑후 아주머니. 언제나 그렇듯 끝 무렵이 되어서야 그 모든 것은 완성된다. 지독한 길치인 내가 떠날 때가 되가 되어서야 머무는 곳의 길을 아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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