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경의 바양노르에서..] 이방인, 신뢰, 그 사이

이방인, 신뢰, 그 사이

201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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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종종 듣게 된 말이 있다. 몽골인이 다 되었다고, 이제 어드커는 몽골 사람이라고. 얼굴을 얼룩덜룩 까맣게 타버렸고, 따가운 햇살에 머리카락은 ‘아토니 술(말 꼬리)’처럼 푸석푸석해져 버렸고, 손은 시꺼멓게 못나지고. 거기다 ‘오가사 모가사(‘원래’ 쯤 된다)’나 ‘배제 배제(‘잠시만 기다려봐’ 쯤 된다)’ 등 이곳 사람들이 쓰는 용어들을 서슴없이 내뱉는 여자 아이. 그게 나다.

얼마 전 다와수릉 아주머니가 내게 따지듯 물었다. 누군가 누군가들은 월급이 많고 누구누구들은 월급이 작다고, 그렇다면 월급이 작은 이들은 주말 동안 일을 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그것이 그들이 이제껏 살아온 방식이라고. 그들이 살아온 사회주의 배경을 고려하면 일면 당연하기도 한 이야기.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여기 만다흐 아저씨가 ‘출로’ (결근)을 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고. 만다흐 아저씨 한 사람이 빠지면 그 팀의 팀원들의 일이 고되어진다고. 그렇다면 힘들게 일한 다른 팀원들과 만다흐 아저씨가 왜 같은 월급을 받아야 하느냐고. 왜 만다흐 아저씨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배려를 받아야 하느냐고, 아주 예의 바르고 조근조근하게, 그러나 꽤나 똑 부러진 목소리로. 어째서 모든 사람이 똑같이 그들의 행동과 상관 없이 똑같은 결과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나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고. 그러자 아주머니와 주변을 지키던 이들은 이런 나의 물음에 고개를 내려놓으며 나지막이 대답한다. 그건 아니라고. 니 말이 맞다고. 기존의 그들의 사고 방식에서 조금쯤 벗어나는 나의 생각에 이렇게 그들은 동의했다.

어젯밤엔 갑작스런 전화가 왔었다. 그 동안 일을 함께 해온 뭉흐 게렐이라는 친구가 갑작스레 UB로 가게 되었다고, 그러니까 원래 계약하기로 했었던 그의 어머니가 이제부터 일을 할 수 없겠느냐고. 이방인으로서는 종종 공격적으로 느낄 만큼 빠른 템포로 자신의 말만을 내어놓는 그의 어머니의 목소리에 귀가 따가워진 나는 조금쯤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은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으니, 내일 아침 조림장으로 나와서 함께 이야기 하자고. 다음 날 아침, 친척 아이 두 명의 부모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자신의 아들이 그들을 돌보기 위해 떠나게 되었다고 따라서 아주 당연하게 아들 대신 일을 해야 한다고 사라 아주머니는 여백 하나 없이 빽빽하게 자신의 상황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미 한 번의 예외였던 그녀(그녀의 친척 3명이 교통 사고로 중상을 입는 바람에 그녀는 그들을 돌보아야 하면서도 경제적 수입이 필요했고 따라서 주민 교육에 참가하지 않았던 그녀의 아들이 대신 계약을 맺었었다)에게 또 한번의 예외를 허락하기에는 그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였다. 이 부분에서는 지 간사님도 서 간사님도 견해가 같았고, 나는 짧은 몽골어로 주섬주섬 나의 생각을 내어놓기 시작했다. 올 해부터 우리가 합의한 약속이 있지 않느냐고. 그렇지만 당신의 갑작스런 상황이 얼마나 힘든 지 알았기에 여기 있는 이들 모두가 합의하여 그 약속에 예외를 만든 것이라고. 하지만 그 예외는 남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하다못해 미리 사정을 설명하지조차 않은 마당에 지금 와서 당신을 대신 고용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온화하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미안하지만, 안 된다고.

나의 이야기가 끝난 후 주변의 사람들의 반응은 나에게는 조금쯤 놀라운 것이었다. 모두들 나의, 우리의 말에 동의를 했던 것이다. (이제껏 유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종종 몽골 사람의 편에서 의견을 내어놓곤 했다.) 무엇보다 다와수릉 아주머니는 나와 같은 뜻을 능숙한 몽골어로 풀어내 주변 이들에 내어놓았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처음에는 한번쯤 봐줄 수 없겠느냐고 이야기하던 이들도 자신은 우리 ‘박시’들에게 받으라 마라 이야기하지 않을 테니 우리들더러 결정을 하라 했다. 예외적인 상황에는 예외가 있었고, 지금의 상황은 예외가 되기에 어려움이 있다 했다. 우리의 원칙을 사람들은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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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물론 이 ‘곧’은 당장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바양노르 조림장은 주민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이 될 예정이다. 자신들의 생각과 자신들의 행동으로. 그렇다면 그러한 미래를 앞둔 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연습은 그들 스스로 규칙을 정하여 합의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주민 조직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팀 제라는 새로운 시도를 했고, 중요한 일을 정하기 앞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간을 꼭 만들려 노력하며,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근본적인 부분들을 굳이 건드려가며 원칙을 적용하는 방향을 고민한다. 되도록이면 그것이 사회주의적인 것이건 자본주의적인 것이건 이념과는 무관하게, 그리고 그것이 내가 되었건 지 간사님이 되었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되도록 애쓰고도 있다. 참 어렵고도 힘든 작업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람들이 우리가 내어놓는 (하지만 물론 그들과 합의를 거치는) 생각들을 조금씩 신뢰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가 비록 완벽할 수는 없으나 공정하고자 그리고 미래지향적이고자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아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도 모르게 한국의 생각과 한국의 사고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몽골 사람이 되었듯 그들도 조금쯤은 한국 사람이 되고 있다.

참으로 몽골스럽게도 서른 여명이 빽빽이 포개어 앉은 트럭 뒷칸, 자신의 앞 켠으로 나의 자리를 마련해 나를 부르던 다와수릉 아주머니는 차가 흔들리자 팔을 뻗어 나를 감쌌다. 자신도 나도 흔들리지 않고 갈 수 있도록. 그 손이 참 따뜻해서였던지 나는 몸이 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꼭 그렇게 그런 방식으로 몽골 현지인 30명과 이방인 네 사람은 서로를 이해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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