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경의 바양노르에서..] 모래폭풍, 그리고 희망..

0522 모래폭풍, 그리고 희망

 

바양노르에서는 그날 그날 다른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오곤 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그 온도도 습도도 느낌도 현저히 다르다. 가령, 북에서 부는 바람은 차갑고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미적지근하다는 식으로. 추가 근무를 하던 토요일은 드물게도 남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던 날이었다. 후끈하면서 끈적거리는 바람이 조금쯤은 기분이 나쁜, 그렇지만 하늘은 새파랗게 상쾌한, 조금쯤 묘한 조화였달까.

 

어제부터 바양노르 사람들은 기우제를 지내는 모양이었다. 오늘 기우제에 참가한다며 두 명이 빠졌고, 어저께 앞 산에서 기우제를 지낸 허럴마 아주머니는 바우와 사탕, 아롤과 같은 제사 음식을 건네왔다. 비가 드문 이 땅에서 비를 기다리는 것은 비단 나무를 심는 우리들만은 아니었던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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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었을까. 오후 작업이 시작될 무렵,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바람이 불면, 전화가 불통이 되는 것을 시작으로 전기가 끊어지고 그래서 석탄을 때우면 석탄 연기가 바람에 역류하여 온 집안을 가득 메우곤 한다. 그런가 하면 모래 폭풍을 동반한 바람은 온 세상을 가득 메우기도 한다. 바로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정신 없이 버드 나무를 심고 있던 조림장 너머로 뿌옇게 회색빛 구름이 엄습해왔다. 사람들은 셔러 쇼락 (순서 그대로 모래 폭풍이라는 뜻이다)이라며 우물집으로 대피해야 한다고 떠들썩했고, 들고 있던 버드 나무는 마저 심어야 했던 나는 빨리 심던 것만 마저 심고 가자며 사람들을 보챘다. 웃음과 당황이 뒤섞인 떠들썩한 식수 작업을 정신없이 끝내고 우물집으로 가던 길, 나랑 후 아주머니는 작년 파놓은 저수조로 풀썩 들어가시더니 그곳에 머리를 감싸고 앉아버리셨다. 나에게도 얼른 이리로 들어오라시면서.

 

바트 볼드는 나에게 버러니 우문 셔러라는 (아마도 몽골 속담 쯤으로 추정되는) 문장을 가르쳐줬었다. 해석하자면 비오기 전 모래 쯤 될 텐데, 아마도 좋은 일 전에 있는 통과 의례와도 같은 고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단비가 내리기 전이면 으레 모래 바람이 부는, 비가 아주 드문 이곳에서, 그래도 그 모래바람이 지나가면 단비가 내릴 거라는 사람들의 희망이 녹아 있는 그 속담에 괜스레 마음 한 켠이 아릿했다. 대륙 한 가운데 어느 바다와도 아주 먼 이 땅에 사는 이 사람들은 물을 얻기 위해 모래 바람을 견뎌내야 했던 모양이다. 이 곳 사람들에게 모래 폭풍은 어떤 면에서는 참으로 반가운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새옹지마처럼 좋은 일과 궂은 일의 연속을 삶이라 본다면, 그래, 궂은 일은 좋은 일의 전조이기에 고마운 것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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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먼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는 목전에서 1톤 정도의 저수조에 와글와글 모여 앉아있자니 다들 뭔가 색다른 신이 났던지 장난 섞인 이야기들과 웃음 소리들을 늘어놓으며 모래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다와 수릉 엑체 (몽골에서는 언니, 아주머니 모두 언니, 엑체라고 부른다)는 오늘 기우제를 지내러 간 앤위시 아하 (아하는 오빠, 혹은 아저씨 쯤 된다) 와 아리 아하의 기도가 불경해서 비가 아닌 모래가 부는 것이라는 말로 나를 폭소하게 했고, 만다흐 아저씨는 모래 비에 저수조가 가득 차면 수영을 해서 살아나가야 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의 유별난 웃음 소리에 사람들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고 그렇게 모래알갱이가 뒤엉켜 회오리 치던 그 시간을 유쾌하게 보내고 있으려니 어느새 모래알갱이가 잦아들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버러 어르지 왠!’ 나의 신이 난 목소리에 다와수릉 아주머니는 앤위시 아저씨와 아리가 이제야 정신을 차렸나 보다며 또다시 너스레를 떨었다. 바트 볼드는 자신의 말대로 비가 오는 것이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나무를 키우는 우리들에게, 그리고 아직 나무를 심느라 바빠 관수를 충분히 하기에 여력이 부족한 우리들에게 그 비가 어찌나 달콤했던 지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그 길이 얼마나 상쾌했던 지는, 그들과 저수조에서 모래폭풍을 지나 보내던 그 시간이 얼마나 유쾌했던 지는, 어렴풋한 기억으로 밖에 남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모래폭풍조차 희망적인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은 어렴풋하나마 지워지지는 않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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