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경의 바양노르에서..] 꿈, 좌절 그리고 실현

0515 , 좌절 그리고 실현

 

이곳 사람들과 일을 함께 하기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이 되어가고 있다. 나이는 어리지만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절대로 고수하되 그것의 실현에 있어서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현장 관리자가 되고 싶다는 나의 꿈은 조금쯤 깨어지고 또 아주 조금쯤은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들을 함께 하고 있는, 때로는 나의 꿈을 깨부수는 주체가 되고 때로는 그 모자람을 채워주는 힘이 되어주는 것은 이곳에서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꾸는 꿈은 결국에는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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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드문 바양노르 땅에서 어떻게든 잘 키워내고자 가차없이 새로 온 나무들에 전지작업을 하면서 문득 내가 이 녀석들과 꼭 같은 과정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나의 한계를 대면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엄습해오는 좌절감과 패배감을 끊임없이 쳐내야 하는 일이다. 아직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경험해보지 않은 초년생에게는 당연한 어려움이기도 하겠지만, 어쨌거나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을 관리해내는 일과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종종 나를 무능감과 자책감으로 빠뜨려버리곤 한다. 또한 이들과 충분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면서도 현장 책임자로서의 위치를 잃지 않는 일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을 본인의 특성에 맞추어 잘 소화해내는 일은 정말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차차르간을 심는 작업을 지시하면서 그 곳에 차차르간을 심는 이유와 식수 계획에 대해 이해시키고자 서툰 몽골어를 잔뜩 쏟아냈다. 작년의 작업에 대해 피드백도 받아가면서. 수놈과 암놈을 효율적으로 심기 위해서 (차차르간은 암수가 분리되어 있다) 이런 이런 방식으로 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면서 말이다. 오전 내내 이들과 뒹굴면서 차차르간 심는 작업을 끝내고 오후에 학교로 한국어 수업을 가야했던 내가 이후의 차차르간 식수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그 모든 일정이 끝난 저녁이었다. 이제 갓 1주차가 되어가고 있는 서 간사님께서 차차르간 암수 구별로 한바탕 사람들과 실갱이를 벌여야 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차차르간의 암수 구별은 (문외한인 나에게도 2년간 작업을 해온 이들에게도) 꽤나 까다로운 작업지라, 으레 처음부터 암 수 구별을 해서 배달이 오곤 하는데 이번에 그 나무들의 암수를 구별해주는 열쇠는 하얀 종이였다. , 하얀 종이에 싸인 묶음이 수나무의 묶음이었다. 덜렁거리는 본인의 성격을 이곳에서 더욱 체감하고 있던 터라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재차 확인 전화를 한 이후 작업지시를 했었고, 수나무라며 심고 있던 주민들의 나무들을 다시 확인하여 일을 진행을 시켰던 참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나는 결정적인 실수를 해버렸던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가식해놓은 나무 묶음들 중에 꺼내온 여러 묶음 중에서 밧줄로 묶인 것과 조금 넓은 하얀 종이 끈으로 묶인 것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후자를 수나무라 생각하고 수나무 자리에 한참 식수를 하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그들과 같은 판단을 했던 나는 그들 ’(맞아)라며 오ㅋ이 사인을 내렸던 것이다. 덕분에 서 간사님은, 하얀 종이끈이 수나무가 맞다고 어드커 박시 (어드커는 나의 몽골 이름이고 박시는 선생님이라는 뜻인데 이곳에서는 현장 매니저를 박시라고 부르곤 한다)가 확인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틈에서 한 시간 가량을 고전하셨던 모양이다. 심지어는 윤 간사님이 다시 본부에 흰 종이 (알고 보니 큰 골판지였다) 에 쌓인 것이 수놈이 맞다는 확인 전화까지 했다는 이야기에 왜 그랬던지 나는 그만 속이 아주 많이 상해버렸다. 이미 한 이야기가 번복되는 상황은 이전에도 그랬듯 나에게 꽤나 큰 스트레스를 주었고, 무엇보다 여러번 확인을 한다고 했음에도 또다시 덜렁대며 실수를 한 내 자신에 대해 화가 났다. 바람이 불어 온실 문을 닫아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마쳤지만, 입구 외에 양 옆의 창문까지는 신경을 못쓴다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문을 제대로 닫지 않으면 온실이 날아갈 수 있다. 다행히도 문을 닫으라는 내 말에 주민들이 알아서 마무리 작업을 했다) 하는 식의 소소한 실수가 벌써 여러 번 겹쳤던 차였다. 거기다 본인의 물품이 종종 없어졌다가 다시 찾는 일은 사실 한국에서도 종종 있었던 일이었지만 이곳에 온 후로 증상이 조금 심해졌다 싶을 만큼 덜렁대는 일이 잦았다. 밤에 화장실을 가다 넘어져서 발목이 삔다거나, 그 후로도 여러 번 넘어져 삔 자리를 여러 번 다친다거나, 열쇠나 작업노트를 잃어버렸다 찾는다거나 하는사소한 실수도 여러 번 겹치다 보면 그 사람의 신용과 연결된다는 생각에 사실 나름으로 신경을 쓴다고 쓴 와중에 일어나는 실수들 앞에서 가끔은 정말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온 세상을 채워버리곤 한다. 더구나 나는 이러한 나의 빈틈을 메우고자 노트를 옆에 끼고 살고 있는데 말이다. 그 날은 정말이지 그간의 실수들로 쌓여왔던 자책감이 온 세상을 까맣게 덮어버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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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둠에 그나마 어스름이 비추기 시작한 것은 고장난 트럭 안에서였다. 다섯 명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바양노르 숙소에서 내가 유일하게 개인 공간이라는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곳은 그 파란 트럭이다. 구입 비용보다 수리 비용이 많이 들어 이제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이 트럭 뒷공간에 앉아있자면 가만한 나를 이곳 바람들이 이곳의 양들이 드라이브를 하며 지나간다. 내가 너무 오만했던 것은 아닐까. 요즘 이곳 사람들에게 내가 종종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반쯤은 착하고 반쯤은 나쁘다. 능력 역시 반쯤 차있고 반쯤은 비어있다. 언제나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법이다. 나 역시 반쯤 차있고 반쯤 비어있는 사람인 걸. 이 구멍 많은 완벽주의자는 완벽주의조차 구멍이 난 채 고수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타인에게는 너그러운 척 실수의 당연함을 인정하면서도 스스로의 실수나 구멍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실은 나의 고질적인 위선인지 모른다. 언젠가 문득 지도자의 진정한 권위는 인위적으로 권위를 세우는 행동이나 한 치의 오차없는 완벽함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타인을 포용하려고 하는, 그리고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동의 이익을 항상 염두하고자 하는 그 사람의 진실성이나 열의, 그런 것들이 타인에게로 전해졌을 때야 비로소 그 사람은 징정한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것이 꽤나 비현실적일만큼 이상적인 견해라는 것은 본인도 잘 알고 있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이상주의자이니까. 그리고 이러한 이상이 없는 현실은 사실은 나에게는 큰 매력이 없는 그저 그런 공간일 뿐이다.

 

제서야 나는 조금씩 나의 구렁텅이에서 기어나올 수 있었는데, 수렁에서 나온 나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광경은 조금 놀라운 것이었다. 한 달 정도의 기간, 이들에게 나의 존재가 꽤나 커졌구나 하는 일종의 작은 감격이었달까. 뒤집어보면, 서투른 몽골어지만 어떻게든 이들에게 지금 우리가 하는 작업들이 왜 이루어져야 하는지 끊임없이 조잘대는, 작은 실수들과 사고를 달고 사는, 그리고 종종 거짓말이 되어버리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많은 대화를 하고자 애를 쓰는 한국에서 온 스물 다섯의 여자 아이가 어쨌거나 이들에게 그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말이다. 그러고보면 언젠가부터 이 사람들이 나에게 작업의 이유에 대해 질문을 해왔다. 얼마 전, 이 박사님께서 전지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만다흐 아저씨가 수줍게 다가와 나에게 가지를 왜 자르는 것이냐 물어왔다. 나의 대답을 들은 후,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는 내 방식대로 이들에게 작은 지도자가 되어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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