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경의 바양노르에서..] 국제 협력 사업이 어려운 이유..II

0420 국제협력사업이 어려운 이유 II

기적이란 이런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소통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불시에, 갑작스레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때문이었으리라. 매일 잇따른 사건 사고로 정신이 혼미할 정도인 바양노르 사업장에서 그 날도 어김없이 몇 가지 사건이 일어났던 터였다. 30명 가량의 조림장 인부를 선발하는 작업은 사실상 꽤나 미묘하고 민감한 사항인지라 벌써 몇 차례의 골치 아픈 과정들을 겪어낸 후였음에도, 이미 겪은 일이라 하여 그 무게가 감해지는 것은 아닌 법이다. 모두가 함께 세운 원칙들을 지키는 일은 현실적 문제들과 타협해가야 하는 상황에서 아주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동시에 원칙은 원칙을 위한 원칙이 되어서는 아니 되는 일이다. (이미 작년부터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는) 주민 교육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서 인부를 선출하겠다는 약속은, 기존의 인부들을 중심으로 이미 성립되어 있는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권력의 카르텔에 의해, 그리고 조림 사업의 작업에 익숙해진 이들이 여러모로 큰 힘이 된다는 현실적 요구에 의해 많이 약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약간의 타협을 거친 수정된 원칙에 의해 올해 작업 인부들을 선발하고 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지만, 아들과 친족들이 갑작스런 사고를 당해 작업이 불가능해졌지만 경제적 이유로 그 아들이 대신 작업에 참가했으면 하는 의사를 전달하는 사람부터 (몽골에서는 계약자가 아닌 사람이 대신 작업에 참가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처럼 당연시 되고 있다) 다른 작업장으로 파견이 되는 사람 등 계약 체결 후에도 몇 차례의 수정이 가해져야만 했다. 이번의 일 역시 이러한 연장선 상의 일이었고, 다른 일들처럼 그 자체로 심리적 압박이 되어버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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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쨌거나 이런 상황들에 대처해야만 하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난점이 있다면, 그것은 ‘합의’이다. 의견을 합하여 하나의 결론을 내어놓는 것은 언제나 느끼듯 녹록하지 않은 일이다. 이는 언젠가 언급했듯 개개인의 ‘차이’가 야기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최근 이보다 더욱 크게 느끼고 있는 것은) 개개인의 방어적 행위이다. 그것은 언어로 표현되기도 하고, 그 사람의 표정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로 드러나곤 하는데 사람 간의 대화가 소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십중팔구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 역시 특정 누군가가 나의 의견에 대해 동의가 아닌 반박과 가까운 반응이 전해질 때면 순간적으로 방어적 반응을 보이곤 하는데, 그것은 종종 이미 내뱉은 나의 말에 대해 억지에 가까운 고집을 부리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가 아닌 대다수의 사람들과의 대화에선 그러한 방어적 기제가 강하지 않은 편인데, 그것은 아마도 개개인이 가진 의견이나 견해의 ‘차이’에 대해 나름의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의 틀 속에서 나의 생각은 세상을 보는 한 가지 시각일 뿐이라는 명제가 꽤나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한동안 나의 장을 꼬이게 했던 그 ‘특정 협력 대상’이 털어놓는 그간의 심경에 내가 그렇게 쉽게 공감하고,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사람의 행동을 그렇게 간단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것도 아마 이러한 나의 특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스스로도 그렇게 쉽게 그 사람의 마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에 놀라웠으니까.

인부 계약건과 관련하여 의견을 나누던 중, 여전히 자신의 의견을 꽤나 강하게 내어놓는 그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의 진심을 느꼈다 (적어도 그러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야기를 하는 방식과는 별개로 나에게는 꽤나 감동적인 것이었다. 대다수의 경우에서 말을 하는 방식은 수용자의 반응을 거의 결정하게 되지만, 나는 그러한 껍데기에 휘둘린다는 것이 애초에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므로, 그 속의 알갱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한 나의 노력이 나름의 결과를 내었건 그렇지 않았건 이전과는 다르게 그 사람의 말투보다는 논리 자체에 강조점이 찍혔고, 그것이 또한 꽤나 정당하고 합당하다 여겨졌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그것과 반대쪽의 논리를 조율하고자 애쓸 수 있었고, (그러한 나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우기’라는 사람의 계약 건에 나름 무사히 합의된 대처 방안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어떤 일을 보는 시각은 한 가지일 수 없듯, 나와는 다른 견해도 있게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그 사람의 주장은 나에게 전달되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었던 모양이다.

그 날 밤, 그 ‘특정 협력대상’씨는 또 한번의 감동을 나에게 선사했는데, 그 사람이 용기 있게 주도한 일종의 ‘진실 게임’에서 나는 그간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그의 행동을 거의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와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그야말로 문화적 차이 때문이었다. 아니, 그 사람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나의 배려 부족이 더욱 정확한 원인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공적인 일과 사적인 감정의 경계가 아주 모호한 그의 특성이 (혹은 몽골의 문화적 특성이) 전제가 되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거의 완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를 나도 모르게 한국인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가 느꼈을 불안감 혹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에 대해 추호도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의 행동 자체는 여전히 나에게 이해 받지 못할 성질의 것이긴 하지만, 핵심은 그러한 행동의 저변에 깔린 배경을 나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미안했고, 그러한 자리를 만들어낸 그의 용기에 감사했다. 다행히도 그 역시 그 동안의 나의 (나름의) 고뇌와 고민에 대해 조금쯤 이해하게 된 듯 했다.

다만 한 가지,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 날 그 대화의 또 다른 한 양상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그야말로 껍데기 간의 갈등이었다. 말은 무엇인가를 전하기 위한 수단이고, 그것을 전하는 방식은 개개인의 성격적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대화 당사자들이 서로 그러한 말 자체의 성격에 대해서 그리고 차이에 대해서 숙고하지 않고, 말 자체의 방식에 대해 서로 심기가 불편해지면 그 대화는 사소한 것들에 얽매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그러한 사소한 것들이 방어적 심리와 연결이 되어버린 후에는 그나마도 겉잡을 수 없이 싸움이 되어버리곤 만다. (내가 보아온 바) 주로 강한 방어적 행동을 보였던 사람들은 주로 자기 주장이 강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나의 판단이 옳다면 아이러닉하게도 그들의 강한 방어 심리는 오히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약하다는 것의 반증이다. 자신의 말에 대한 타인의 반박이 자신의 많은 생각 중 하나를 표현한 말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그 모든 생각, 혹은 그 자신 자체에 대한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그 반박에 대해 그렇게 격렬한 대응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약점은 동시에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것에 정도의 차가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사람 마다 약한 부분의 영역에 차이가 있다면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그들이 조금만 더 서로에게 열어 보일 수는 없었을까, 조금만 더 용기를 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점이다. 어쨌거나 진솔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쉬이 오는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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