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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약하면 위를 잘라야 합니다.

 
  옛사람들은 “작은 나무를 옮겨 심으면 사는데, 큰 나무를 옮겨 심으면 죽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무를 키울 때는 큰 나무보다 시간이 더 걸려도 작은 나무를 심어 잘 키우면 세월이 지났을 때 작은 나무가 결국 큰 나무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죽어 버린 큰 나무보다 살아남은 작은 나무가 훨씬 의미가 있겠지요.

저도 이에 대한 아픈 경험이 있어 정리를 해 보고자 합니다.

  2006년 5월 몽골 사막화가 진행되는 건조지역에 1만 그루의 나무를 심을 때 이야기입니다.
당시 건조지역의 생태복원을 위한 검증된 방법들이 정리되지 않아 1만 그루의 나무를 심으면서 몇 가지 실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3천 5백 그루씩 3개의 군을 나누어 각각 다른 방법으로 접근을 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지점에는 1년생 혹은 2년생 묘목을 심되 그 지역에서 커 온 묘목을 심고, 둘째 지점에는 2년생 묘목을 심되 다른 지역에서 자란 묘목을 심고, 셋째 지점에는 3년생 혹은 5년생 묘목인데 상당히 자란 묘목을 심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모든 묘목에 대해 정성스러운 관리를 했습니다. 만일 3곳의 나무들이 모두 활착을 한다면 굳이 작은 나무나 현지에서 키운 나무를 고집할 필요가 없기에 단단히 마음먹고 시작을 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온 묘목은 사막화지역에서 부족한 묘목 공급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했고, 큰 묘목은 3년 이상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했습니다. 성공적이라면 사막화방지를 하는 데 꽤 의미 있는 데이터를 얻게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또 1년이 지나 2007년 6월 드디어 심은 나무에는 푸른 잎이 달리기 시작했고, 그 주변의 풀들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푸른아시아 활동가들과 몽골 사람들은 6월부터 3개 지역에 심은 나무의 생존상태를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지에서 조달한 지역의 묘목은 돌아볼 것도 없이 95%가 생존했고, 다른 지역에서 온 묘목은 80%의 생존을 했습니다. 그런데 키 큰 묘목은 60%이하로 생존을 했습니다. 키 큰 묘목의 경우 특이하게도 윗부분은 아예 말라 죽고 뿌리 부분에서 다시 줄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결국 이런 묘목까지 합쳐서 겨우 60%의 생존율을 보였습니다.

이런 상태라면 뿌리가 활착한다고 볼 수 있는 기간인 3년 뒤의 생존율은 형편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로 고민을 했지만 답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무식해서 그랬지요) 그 해 겨울, 저는 나무에 대해 해박한 전문성과 지식을 갖고 있는 산림학 박사인 이덕수박사를 만나 물었습니다. 큰 묘목들이 못 살아남는 이유에 대해 말입니다.
의외로 이 박사님의 대답은 간결했습니다.

“위를 잘라주었나요”

저의 대답: “아니요, 자르면 아깝지 않나요?”

이덕수박사의 대답: “위를 1/3이상 확 잘라야 합니다. 반을 자르면 더 잘 살고요. 큰 나무의 묘목은 원래 묘목을 키운 땅에서 옮길 때 뿌리가 1/3이상 훼손됩니다. 뿌리가 없으니 위도 그 만큼 잘라야 삽니다. 그래서 뿌리가 약하면 위를 잘라야 삽니다.”

그랬습니다. 나무에 대해 무식한 사회과학도인 저는 한방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뿌리가 약하면 위를 잘라라”

이것을 교훈으로 삼아 그 이후 과감하게 위를 잘라내었습니다.
아울러 이덕수박사는 이 인연으로 푸른아시아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스승으로부터 매일 배워야 하니까요.

그런데 작년인 2008년 2월 정도로 기억하는데 정치에 입문하려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는 학생운동을 한 후 대기업경험을 쌓았고, 아울러 선 후배관계가 탄탄하고 유력한 정치인들과도 교분을 쌓았습니다.
그 친구는 20여년 이상 친했던 친구였기에 자신의 정치입문에 대해 조언을 해달라고 했고, 부담스러웠지만 최선을 다해 대답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친구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친구를 보자마자, 떠오른 것은 “뿌리가 약하면 위를 잘라라”는 이미지였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다 발견한 것은 스스로 이미 큰 나무라고 보고 있었지만, 그 친구와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였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뿌리가 약하니 기대치를 과감하게 잘라야한다고 하고 현재는 정치입문보다 관계를 하고 있는 분들과 함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책을 한권 만드는 것이 어떠냐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냐고요…….그 친구는 저의 조언에 고맙다는 표현을 했지만 자신의 길을 갔고 현재는 백수로 있습니다. 물론 현재 그 친구와 부담 없이 만납니다. 친구이니까요…ㅎㅎㅎ
그래도 요즘도 그 친구와 만나면 꼭 이런 이야기를 다시 해 줍니다.

> “김 0 형, 실체에 근거한 기대치를 만들어 봅시다. 기대치를 더 낮추면 더 좋고요..그것이 겸손함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뿌리를 키우면 기대치를 확 키울 수 있겠지요. ㅎㅎㅎ”

그래서 저는 작은 나무가 좋습니다. 그 이유는 큰 나무를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황폐지를 원래의 초원지대로 또 조림지대로 회복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니까요.

저는 요즘 우리나라가 만드는 정책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눈에 보이고 겉으로 자랑할 만한 것을 내세우고 정작 뿌리를 길러내는 일에 소홀하다는 점입니다.
요즈음 제가 기후변화와 관련한 일을 하다 보니 우리 정부가 제기하는 녹색성장이나 녹색뉴딜에 대한 정책을 봅니다. 우선 드러난 녹색성장과 녹색뉴딜의 화려함에 눈을 껌벅거리면서 보아도 사실상 정말 화려해보이거나 실속이 있어 보이지 않네요.

태양광이나 풍력, 조력 등의 새로운 에너지원의 핵심기술은 기반과 기초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것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의 노하우와 역사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에너지원은 냉장고를 만드는 것하고는 정말 많이 다릅니다. 핵심기술에 대한 축적과 집적, 그리고 오랜 역사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에너지기술의 기초와 마인드 등 본원적으로 뿌리가 약하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 우리나라의 에너지정책과 녹색뉴딜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일부 정치가들이 21세기의 세계를 우리가 지도하고 이끌어갈 듯이 녹색성장정책을 만들어내고 있더군요. 세계에서 유일하게 포괄적인 녹색성장과 법을 만들고 있다고 우리 국민들에게도 말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국제사회에도 말하고 다니니 모든 것이 왜곡되어 보이고 우스워 보입니다. 제가 자주 논의하는 호주출신의 에너지 학자가 있는데 한국의 이런 녹색성장정책에 대해 만나기만 하면 우려스럽게 이야기합니다. 흡사 냉장고 만들듯이 에너지문제에 접근한다는 것이지요.

오늘도 몽골과 중국 북부에서 시작한 황사가 한국에 찾아왔습니다. 오늘 나온 언론보도들에 의하면 이 황사에는 납, 카드뮴이라는 중금속만이 아니라 아황산가스와 다이옥신이 포함되어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다이옥신은 위험합니다. 다이옥신은 대표적인 환경오염물질인데 약간의 양으로도 임산부와 노인, 어린이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1년 동안 한국의 땅에 쌓이는 황사양은 1백만 톤입니다. 문제는 이 황사가 상수도지역과 강과 바다, 초지에 떨어져 영향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다이옥신과 카드뮴, 아황산가스가 상수도지역에 떨어져 수돗물로 가정에 배달되고, 강과 바다의 물고기가 오염되어 식탁에 오르고, 오염된 풀을 먹은 소와 돼지, 가축들이 식탁에 오른다고 생각해봅시다.

결국 우리는 황사로 인해 발생하는 이차오염의 피해를 깊이 고뇌하고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황사에 저는 익숙할 때가 된 요즘에도 황사만 보면 황사발원지에서 작은 나무를 어떻게 더 잘 키울까 자꾸 새로운 마음으로 고뇌를 합니다.

아이고…또 쓸 데 없이 긴 글을 쓰고 말았습니다. 그려~~~